김영삼 전 대통령이 퇴임 직후 미국을 방문한 적이 있습니다. 그때 미국 LA에서 교민을 상대로 강연을 한 적이 있는데 그 강연의 요지는 다음과 같습니다.
자신이 대통령으로 있으면서 박정희 재산을 파악해봤는데 엄청나더라. 정수장학회라는 이름으로 MBC 주식의 30%를 가지고 있고, 부산일보의 실질적 사주이며 대구에 있는 영남대학교도 사실상 그의 소유다. 사실상 우리나라 부정축재의 원조가 박정희다.
요즘 민영화 논란에 휩싸인 MBC의 자산가치가 10조 원에 이른다는 평가를 보면 박정희의 유산은 대충 잡아도 수조 원에 이를 겁니다. 이런 엄청난 재산은 박정희가 대통령 월급을 착실히 모아 마련한 것은 아니겠지요. 나중에 정부 차원의 조사에서 밝혀졌지만 말이 헌납이지 강탈 혹은 다른 대가를 주고 축재한 것입니다.
어떻든 좋습니다. 부정축재한 유산이지만 좋은 일에 쓴다면 누가 뭐라고 하겠습니까. 그런데 그게 아닙니다. 이 유산을 놓고 자식들이 싸우는 것을 보면 거의 막가파식입니다. 규모가 작은 육영재단은 10여 년 전 각목이 난무하는 상황에서 박근혜씨가 도망치듯 육영재단을 동생에게 빼앗겼습니다. 둘째딸은 재단을 마구 운영하다 정부 감사에 걸려 해임됐습니다. 이번에는 아들이 재단을 사실상 접수하자 누나가 반발하며 싸우고 있습니다. 바리케이트가 쌓이고 각목이 난무하는 말 그대로 Ⅹ판입니다. 그 싸움장에는 그들의 어머니 육영수씨 영정이 널부러져 있습니다. 이런 재산 싸움과 불효가 계속되는 현장에서 무슨 육영사업을 합니까. 직원들은 “육영사업을 할 자격도 없는 사람이 재단을 망치고 있다”며 이들이 손을 뗄 것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이번 호
사형당한 이수근씨가 최근 재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았습니다. 인혁당 사건, 민족일보 조용수 사건 등 박정희 정권은 무고한 사람을 많이 죽였습니다. 지금 국가는 이들에게 수십억 원에 이르는 배상을 하고 있습니다. 그 돈은 모두 내가 낸 세금입니다. 박정희가 장기 집권을 위해, 부정축재를 위해 죽인 무고한 사람에 대한 배상을 피해자인 국민이 하고 있는 겁니다. 박정희의 엄청난 유산으로 지금 자식들이 떵떵거리며 살고, 아니 추악하게 재산 싸움을 하고 있는데 말입니다. 재산이 많다면 형제간 싸움보다 아버지 시대에 피해를 입은 이들에게 우선 배상하는 것이 상식이고 도리 아닐까요.
청와대 홍보수석을 했던 조기숙씨가 얼굴도 모르는 자신의 증조 할아버지가 동학혁명을 야기한 고부군수라는 것이 알려지자 무릎 꿇고 울면서 국민에게 사죄했습니다. 한참 지난 역사적 일인데도 말입니다. 게다가 박근혜씨는 차기 대권주자로도 꼽히는 정치인입니다. 그의 정치적 자산의 상당 부문은 아버지에게 얻은 것일 겁니다. 그런데 아버지의 긍정적 유산만 챙기고 부정적 유산은 나몰라라 하는 것은 옳은 일이 아닙니다.
<원희복 편집장 wonhb@kyunghyang.com>
2009/01/06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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