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11일 저녁 9시 14분 서울형사지법 418호 법정. 큰 법원 건물 전체에 어둠이 깔리고 4층 복도 역시 대부분 소등됐다. 418호 법정 앞에 ‘개정 중’이라는 희미한 등불이 켜 있다. 문은 안으로 굳게 잠겨 있고, 법정 안 고성이 간간이 밖으로 들릴 뿐이다. 오전 10시부터 시작된 이 재판은 12시 점심식사 이후 오후 2시에 속개돼 저녁식사도 거르고 문을 걸어 잠근 채 비공개 재판을 계속하고 있다. 복도의 재판 안내판에는 제26형사부(재판장 김두수) 사건번호 2014고합000 증인심문이 명시돼 있다.

이 사건은 이른바 ‘북한 보위사령부 직파 간첩사건’ 재판이다. 이날 재판은 중앙합동신문센터 직원 5명에 대한 증인심문이 있었다. 직원 5명 중 4명은 국가정보원 직원이며, 한 명은 국군기무사 직원이다. 이 5명의 증인은 법정에서 조그만 체구의 한 변호사 앞에서 신랄하면서도 떨리는 증인심문을 받아야 했다. 그 변호사가 바로 장경욱 변호사(46)다.

이날 증인심문은 밤 10시가 넘어 끝났다. 저녁도 굶은 재판장과 검사, 변호사, 증인들은 지친 모습으로 나와 각자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마치 한바탕 전투를 치른 군인들 같았다. 실제 장 변호사는 ‘여기서 변호인이 검사나 증인에게 농락당하면 피고인은 죽는다’는 심정으로 증인심문을 했다고 한다. 증인심문이 끝난 후 하기로 했던 장 변호사 인터뷰는 이튿날 다시 하기로 했다.

장경욱 변호사 | 이상훈 선임기자


“합동신문센터 개선, 눈 가리고 아웅”
서울시 공무원 간첩조작 사건은 탈북 화교 출신인 유우성씨가 서울시에 공무원으로 잠입, 간첩활동을 했다고 발표한 어마어마한 사건이다. 그러나 1심 재판과정에서 북한에서 찍었다는 유씨 사진이 조작된 것으로 드러나 무죄판결이 났고, 항고심에서는 유씨의 북한 출입경 서류를 조작한 것이 드러나 큰 파문을 일으켰다. 중국 정부는 이 재판에 제출된 중국 측 공문서가 조작된 것이라고 발표해 외교적 문제까지 됐다. 결국 이 조작 사건의 여파로 국정원장이 사퇴하고 조작에 참여한 인사들이 줄줄이 사법처리 혹은 징계를 받고 있다.

이후 국정원은 간첩 조작의 온상으로 지목된 중앙합동신문센터를 대폭 개선하겠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장 변호사는 “중앙합동신문센터를 북한이탈주민센터로 이름을 바꾸고 개방한다고 했는데, 알고 보면 창문을 좀 크게 한다거나, 잠시 기자들에게 내부를 공개하는 정도다. 일시적이고 형식적인 개선으로 눈가리고 아웅하는 것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탈북자들이 초기부터 변호인의 조력을 받을 권리 등 법적·제도적 보완책은 전혀 없다는 것이다.

사실 간첩 조작사건, 특히 탈북자들의 간첩 조작사건은 진실을 밝히기가 무척 어렵다. 관련 정보를 국가가 독점하고 있는 데다 국가보안시설이라는 이유로 접근마저 어렵다. 특히 탈북자의 경우 국내에 일가친척이 전혀 없어 최소한의 지원도 못 받기 십상이다. 무엇보다 변호사 수임료가 없는 이 재판을 맡으려는 변호사도 많지 않고, 잘못하다가 우리 사회에서 가장 치명적인 ‘종북’이라는 낙인까지 찍힐 수 있기 때문이다.

민변 내부에서조차 질시 어린 시선
장 변호사는 유우성 간첩 조작사건은 약과라고 말했다. 그는 “보위부 직파 여간첩 이00(38) 사건의 경우 대법원 선고 날짜까지 잡았는데 늦춰졌다”면서 “중앙합동신문센터의 야만적 심사과정이 위헌법률심판 제청되면 유우성 간첩 조작사건 이상의 핵폭풍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여간첩 이00 사건이란 2013년 2월 중국과 라오스, 태국을 거쳐 대한민국에 입국한 이00씨가 중앙합동신문센터에서 북한 보위부 공작원이라고 자백한 사건이다. 그녀는 1·2심 재판과정에서 혐의를 인정했는데, 2심에서 징역 3년이 확정되자 심경의 변화를 일으켰는지 혐의를 부인했다.

그가 관심을 갖는 탈북자는 말 그대로 최악의 처지에 내몰린 막장에 서 있는 사람들이다. 자유를 찾아 남으로 내려온 그들이 상상할 수 없는 인권유린 과정을 거쳐 간첩으로 만들어지고 있다고 그는 주장한다. 유우성 간첩 조작사건 역시 6개월 동안 여동생을 회유하고 협박해 오빠를 간첩으로 만든 반인륜적 범죄였다. 그의 변론 목록에 4~5명의 탈북 여간첩 이름이 등장한다. 그는 이 사건의 진실을 가리기 위해 이들이 수용돼 있는 청주여자교도소를 자주 찾는다.

이렇게 탈북 간첩사건의 진실을 따지다 보니 그에게는 ‘종북변호사’ ‘좌익변호사’라는 꼬리표가 붙었다. 한 보수 인터넷 언론은 장 변호사를 이렇게 비난했다.

“유우성을 변호하는 민변의 장경욱 변호사는… ‘우리에게 문제가 되는 건 북을 악마화하고 기계화시키는 것이다. 너의 사상은 뭐냐, 사상을 자꾸 드러내게 하고 그게 화두가 된다는 거 자체가 또 다른 비정상적 사회의 이야기 구조다’라는 궤변을 늘어놨다. 한국 사회에 무슨 매카시즘이 있다고 요런 가증스러운 요설을 장경욱 변호사는 풀어대나… 장경욱과 같은 좌익변호사의 문제는 생지옥 상태인 북한의 인권을 외면하고, 간첩으로 충분히 의심되는 자의 인권을 비호한답시고, 한국의 후진 법조문화를 악용하여 대한민국의 안보에 치명타를 가한다는 점이다. 장경욱 변호사의 요설을 중단시키는 것은 한국 사회(특히 법조계)에 공의와 공익을 구현하는 데에 필수적인 조치일 것이다.”

3월 15일 서울 청계광장에서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등이 주최한 ‘국정원과 검찰의 간첩 증거조작 사건 설명회’에서 당사자인 유우성씨(오른쪽 두 번째)와 장경욱 변호사(맨 오른쪽)가 참석해 발언하고 있다. | 연합뉴스


그는 이런 ‘좌익변호사의 가증스런 요설’이라는 극단적인 비난에 개의치 않는다. 오히려 아픈 것은 내부의 ‘튀는 변호사’라는 질시 어린 시선이다. 처음 유우성 사건이 조작임을 폭로하는 기자회견을 했을 때 민변 내부에서조차 핀잔을 들었다. 민변을 종북논란에 휘말리게 하는 빌미를 줬다는 것이다. 장 변호사는 “나중에 민변이 상을 주긴 했지만, 힘들 때 같이 싸워주고 힘이 되어줘야 하는데… 너무 힘들었다”고 말했다.

“정치 할 건가”라는 질문에 대답 유보
그는 대학(서울대 87학번) 때부터 공부는 안하고 학생운동에 매달렸다. 1991년 총학생회에 인권위원회를 만들어 인권위원장으로 기금도 만들고 인권소식지를 만들었다. 대학을 졸업하고, 군대(방위로 입대해 용산에 있는 ‘용사의 집’ 식당 웨이터로 근무했다)까지 제대한 후 ‘뜻한 바가 있어’ 사법시험에 도전, 단번에 1·2차 시험에 합격했다. 사법연수원을 마친 후 2000년부터 변호사로 활동했는데 처음 맡은 사건이 시국사건이었다. 그리고 이후 수임한 사건 대부분이 간첩사건이다.

대학 때의 열정을 14년이 지난 지금껏 유지하는 것은 초심을 지킨다는 좋은 의미도 있지만 변화에 적응하지 못한다는 지적을 받을 수도 있다. 이 질문에 그는 “(고개를 끄덕이며) 그런 면이 있다. 적응력이 떨어진다”고 시인했다.

초등학교 선생이던 아버지는 일찍 돌아가셨다. 제주 출신의 생활력 강한 어머니가 많이 고생했지만 막내로 어머니의 고생을 잘 이해하지 못했다고 한다. 부모님이 모두 돌아가신 후 8살 많은 큰누님이 그의 어머니 역할을 대신했다. 외국에서 봉제업을 크게 하는 큰누님은 “변호사로 장사하지 마라”고 신신당부했다고 한다. 그 큰누님이 자신에게 상당액을 ‘증여’하고 있어 집안의 경제적 문제를 해결한다고 했다. 또 오랫동안 도와주는 사람, 자문료를 충분히 얹어주는 사람도 있다. 이렇게 번 돈은 탈북자들 교도소 영치금으로 들어가고 변론팀 활동비로도 쓴다. 하지만 언제까지 이런 식으로 비용을 댈 수 없어 ‘민들래 기금’이라고 일종의 법률구조 기금을 만들려 하고 있다.

그는 1989년 법대 학생회장 선거에 부회장 후보로 출마했다 낙선했다. 이미 선거의 쓴 맛을 본 것이다. 결국 이런 변호사 생활은 정치를 하기 위한 사전 작업이 아니냐는 질문에 그는 시인도 부인도 하지 않는다.(상자 기사 참조) 마지막으로 “나이에 비해 많이 벗겨진 머리, 노인과 같은 엉거주춤한 자세는 대중 정치를 하기에 무리 아닌가?”라는 거의 ‘인신공격성’ 질문을 했다. 이에 그는 웃으며 이렇게 대답했다.

“나는 모른다. 남들이 주변에서 그런 말을 하는데 나는 잘생겼다고 생각한다. 총각 때는 여자들이 모두 나를 좋아한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착각이더라. 알고 보니 내숭없이 나를 좋아해 준 사람, 우리 집사람밖에 없더라.”(하하하)



“국정원 수사권 폐지해야 간첩 조작 사라져”

장경욱 변호사 |이상훈 선임기자


공안검사 친구나 국정원 직원들이 ‘몸조심 하라’는 얘기 안하나.
“글쎄, 그런 얘기는 오히려 주변 친한 사람들이 한다. 그런데 아무런 근거 없다. 오히려 국정원 간섭이 통하지 않는 변호사로 알려져 국정원 직원 간통사건 의뢰가 온다.(하하) 가끔 국정원 직원들이 ‘왜 이렇게 열심히 하냐’고 물어보긴 한다. 그러면 ‘너희들 때문이다’라고 대답한다.”

과거 간첩 조작사건 대부분은 시간이 흐른 후 재심으로 진실이 드러났지만 이번에는 재판 도중 진실이 가려졌다.
“두 가지 요인일 것이다. 하나는 중국에 이미 가족이 있다는 것과 가톨릭의 도움이다. 유우성의 멘토가 신부님이고, 이 사건을 처음 공개한 것도 신부님이다. 유우성은 가톨릭 청년모임의 회장이고, 탈북청년 가톨릭 멤버다. 그런 유우성을 (국정원이) 잘못 친 것이다.”

권위주의 시절에나 있던 이런 간첩 조작 악습이 재연되는 이유는 뭐라 보는가.

“아니다. 국정원은 계속 그랬다. 김대중, 노무현 정권 시절 국가보안법이 사문화됐다고 하는데, 사문화된 적이 없다. 일심회 사건, 왕재산 사건 모두 그 때 벌어진 일이다. 국정원 수사권이 폐지되기 전까지는 개선되기 어렵다.”

촛불사태로 궁지로 몰렸던 2008년 8월 여간첩 원정화 사건도 조작이라는 폭로가 최근 나왔다. 폭로한 사람이 다름 아닌 수사를 담당했던 경기경찰청 보안수사대장이더라.

“얘기를 들었다. 내부 양심선언이 나오는 것이다. 설마 대한민국 국정원이 그럴까 생각할 것이다. 하지만 지금의 국가보안법 체제에서는 수많은 정치적 희생양이 필요하니까 간첩 조작이 이뤄지는 것이다. 유우성 사건은 그런 설마를 사실로 확인시켜준 것이다.”

왜 간첩 조작 전문 변호사로 뛰게 됐는가.

“대학생 때 학생회 내에 인권위원회를 만들었다. 구속자, 열사들이 많이 생겨 그들 뒤치다꺼리를 해야 하는데, 학생운동은 앞으로만 달려가고 뒤로 챙기는 사람이 없었다. 선배 인권변호사도 내 마음같이 안 움직여 주더라. 그때 내가 변호사면 좀 더 잘할 텐데라는 생각을 했다. 고시 공부를 하면서 자연스럽게 인권변호사를 하겠다는 생각을 했다.”

사법시험을 단번에 1·2차 합격했는데 왜 재조 경험을 쌓지 않았는가.

“운동권 학생이 고시공부를 했다가 판·검사가 된다는 것이 연결이 안 됐다. 진로에 대한 고민을 많이 했다.”

솔직히 연수원 성적이 나빴던 것 아닌가.

(약간 민망한 표정으로) “당연히 안 좋았다.”

요즘 변호사 사무실을 유지하기도 어렵다고 한다. 게다가 간첩사건 변론 수임료도 많지 않을 텐데.

“탈북 간첩사건 수임료를 누가 주나. 다른 간첩사건을 변론하면 100만원도, 150만원도 준다. 그런데 탈북자들은 줄 사람이 없다. 오히려 우리가 구치소 영치금을 줘야 한다. 가톨릭 신부님들을 탈북 간첩과 멘토로 연결해주는 것이 큰 힘이 되고 있다. 뛰어다니며 신부님들에게 설명해 연결시키고 있다.”

이런 행보는 결국 정치를 하기 위한 것 아닌가.

“그런 질문 많이 받는다. 그러나 국회의원… 이런 식의 정치가 아니다. (잠시 생각을 하더니) 국민의 지지를 받는 희생적 리더십, 그런 공동체에 헌신한 사람이 되고 싶다. 내 모든 것을 소진해 다른 사람을 위해 희생적으로 살았다, 그렇게만 인정받으면 웃으며 죽겠다.”


<원희복 선임기자 wonhb@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