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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희복의 인물탐구

북한민주화운동가 김영환…영웅주의에 빠진 왜곡된 혁명가인가 그의 행보는 여전히 미스터리했다. 연락도 무슨 간첩 접선하듯 해야 했다. 사무실로 전화할 때마다 외국에 나가 있다고 했다. 연락처를 남겨두라고 했지만 열흘이 지나도 연락이 없다. 나중에는 e메일 주소를 알려주며 이쪽으로 연락하라고 했다. e메일로 연락을 했지만 답장이 없다. 몇 가지 서면 질문지를 보냈지만 원고 마감까지 답장은 오지 않았다. 2주 동안 그와 접촉을 시도했지만 ‘될 듯 말 듯’ 하다 결국 이뤄지지 않았다. 그는 김영환(51)이다. 이 땅에 처음으로 주사파를 이식한 이다. 그는 1991년 반잠수정을 타고 북한에 들어가 노동당에 입당하고 김일성 주석을 만났다. 북한에서 미화 41만 달러를 받고 돌아와 지하혁명당을 만들어 남한체제를 전복하려 했다. 그러다 180도 생각을 바꿔 전향했다. 그는 지.. 더보기
박승춘 국가보훈처장…고도의 계산된 좌충우돌식 행보 과거 군인이 득세하던 전두환 정권 시절 ‘국방위 회식사건’이라는 것이 있었다. 1986년 3월 21일 저녁 서울의 한 요정에서 국회 국방위원과 고위장성이 함께 술을 마시다 난투극을 벌인 사건이다. 당시 실세 군인들이 여당 원내총무에게 “이새끼… 총무가 뭐 이렇게 늦게 오고 그래?”라며 힐난했다. 이를 지켜보던 기자 출신 남재희 의원이 맥주잔을 맞은편 벽에 던졌다. 맥주잔이 깨지면서 유리파편이 한 장성의 얼굴에 튀어 피가 흘렀다. 이에 군인들이 국회의원에게 발길질을 하며 두들겨 팼다. 이는 권력의 실세(군인)가 국회(의원)를 무시한 대표적 사례라고 할 수 있다. 지난 2014년 11월 13일. 육군 중장 출신의 박승춘 국가보훈처장이 국회 정무위원장실을 찾았다. 박 처장은 정우택 위원장에게 예산심사소위에서 .. 더보기
사진작가 이시우…피사체 본질 연구하는 평화운동가 ‘뛰어난 사진 한 컷이 10개 기사보다 우월하다’는 말은 사진작가나 사진기자들이 자주 하는 말이다. 실제 로버트 카파가 1936년 스페인 내전에서 찍은 ‘쓰러지는 병사’ 사진은 전쟁의 참상을 고발한 걸작으로 꼽힌다. 우리나라도 1960년 4월 11일 마산 중앙부두 앞 바다에서 떠오른 김주열군의 시신 사진 보도가 4·19혁명을 촉발시켰다. 사진은 보통 그 자체로 말한다. 그런데 한 장의 사진을 보완·설명하기 위해 엄청난 분량의 텍스트(문서)를 검증하고 첨부하는 독특한 사진작가가 있다. 인천시 강화에서 살고 있는 사진작가 이시우(1967년생)가 바로 그다. 그는 평화운동가라는 소리를 듣고, 심지어 국제정치학자라는 평가도 받는다. 그가 지난해 쓴 844쪽의 (들녘)는 66쪽에 이르는 참고문헌과 1763개의 각.. 더보기
국회의원 조경태, 소신있는 원조 친노 원칙주의자? 정치적 계산 분명한 현실주의자? 얼마 전 세월호 유족 대표와 대리운전기사 폭행사건이 터지자 새정치민주연합 조경태 의원이 같은 당 김현 의원에 대해 “출당조치를 통해서라도 당의 기강을 바로잡는 것이 국민에 대한 예의이자 도리”라고 주장했다. 김현 의원이 폭행 현장에 같이 있었기 때문이다. 새누리당에서는 “참으로 일리 있고 가슴에 와 닿는 옳은 말씀”이라며 환호했다. 이에 새정치연합 정청래 의원은 “사사건건 새누리당의 정신적 당원처럼 활동하면서 탈당, 분당 운운하는 조경태 의원을 당 지도부는 출당 제명시켜라”고 요구했다. 당론과 어긋나는 튀는 발언 눈길 조 의원은 야당에서 매우 독특한 존재다. 당론과 어긋나는 발언을 자주해 여당 의원으로 착각할 정도다. 문재인 대통령 후보 필패론을 주장했고, 대선 직후 NLL(북방한계선) 논란에서도 오히려.. 더보기
피고인석에 선 변호인 권영국 ‘노무현 스타일’ 닮은 거리의 변호사 지난 10월 20일 서울중앙지법 제29형사부(재판장 윤승은 부장판사) 법정. 보통 4~5명에 불과한 변호인석이 이날따라 변호사들로 발 디딜 틈 없이 꽉 찼다. 일부 변호사는 서 있고, 그것도 모자라 방청석에까지 변호사들로 넘쳐났다. 이날 법정에 나온 변호사는 모두 38명, 공동변호인 선임계를 낸 변호인은 모두 85명이었다.(공동변호인 선임계는 계속 늘어 29일 현재 100명이 넘었다) 피고인석에는 흰머리에 다소 왜소한 한 남자가 상기된 표정으로 앉아 있었다. 집시법 위반, 교통방해죄 등으로 기소된 권영국 피고인(변호사)이었다. 영화 을 떠올리게 하는 장면이었다. 부림사건으로 기소된 노무현 변호사를 변론하기 위해 나온 99명의 공동변호인단 이름이 한 명 한 명 호명되는 장면은 영화의 마지막 클라이맥스를 이.. 더보기
최고령 공직자 ‘자니 윤’ 보은 인사의 ‘코미디’인가, 노령화 시대 ‘노익장’인가 박근혜 정부 들어 가장 큰 문제로 지적되는 것이 ‘인사’이다. 아무 때나 실실 웃다 장관직에서 면직되는가 하면, 사퇴한 총리를 재신임해 ‘재활용 총리’라는 말까지 나왔다. 최근 박근혜 정부는 인사에서 또 하나의 ‘신기원’을 만들었다. 무려 79세 최고령 공직자를 배출한 것이다. 박근혜 정부 이전까지 최고령 공직자(국회의원 제외)는 2006년 임명된 조창현 방송위원회 위원장으로 당시 나이 71세였다. 조 위원장은 67세에 중앙인사위원회 위원장으로 발탁돼 공직을 수행했다. 따라서 명예직이나 비상임이 아닌 상임 79세 첫 공직 임용은 역대 최고령 기록이다. 79세 나이로 상임감사 공직에 발탁 해당 분야에서 계속 일했던 것도 아니고, 80세를 바라보는 나이에 어떻게 첫 공직자로 발탁될 수 있을까. 개인적으로 뛰.. 더보기
딴지그룹 총수 김어준… 쫄지 않는 사업가인가, 마초주의 입담꾼인가 ‘불편한 진실’ 하나를 말해보자. 최근 카카오톡 감청 논란으로 사이버 망명사태가 벌어지고 있다. 카톡 사용자가 이탈하고 대신 텔레그램이라는 외국 매신저가 각광을 받고 있다. 회사를 합병하고 멋지게 출범하는 다음카카오의 주가는 폭락하고, 급기야 사장이 법원의 감청영장에도 응하지 않겠다고 나섰다. 사이버 망명이 계속되면서 한국 IT산업의 위기라는 얘기까지 나오고 있다. 이 사태는 9월 16일 국무회의에서 박근혜 대통령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도를 넘는 모독’”이라는 발언에서 시작됐다. 9월 18일 대검찰청에서 사이버 엄단 범정부 대책회의가 열렸고, 온라인 대피령으로 이어졌다. 이런 온라인 대피 분위기와 텔레그램을 처음 소개한 언론은 ‘불편하게도’ 팟캐스트 ‘김어준의 파파이스’다. 김어준은 9월 26.. 더보기
‘왕장관’ 최경환 경제부총리… 환란·공기업 부실 오욕, 경제살리기로 만회할까 어느 정권이나 대통령의 절대적 신임을 받는 ‘실세’가 있게 마련이다. 호사가들은 이런 사람들에게 보통 임금 ‘왕’자를 붙인다. 김대중 정부에서는 박지원 수석이 왕수석으로 통했고, 노무현 정부에서는 문재인 수석, 이명박 정부에서는 대통령의 친형 이상득 의원을 ‘상왕’으로 표현했다. 박근혜 정부에서는 김기춘 실장이 ‘왕실장’으로 불리며 독보적인 존재다. 그런데 최근 신예가 등장했다. 바로 최경환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다. 요즘 왕실장인 김기춘 실장보다 ‘왕장관’ 최경환 부총리가 더 힘이 세다는 소문이 자자하다. 정치권의 한 인사는 “과거 김기춘 비서실장이 부산·경남(PK) 인사의 통로였다면 최 부총리는 대구·경북(TK) 인사의 통로”라며 “요즘 승진이나 한 자리 잡기 위해서는 최경환 부총리를 통해야 한.. 더보기
이인호 KBS 이사장… 친일 할아버지 극복 못하고 양지만 좇은 변신의 처세가 최근 오드리 헵번이라는 영화배우 이름이 인터넷 포털과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 화제가 됐다. 이미 타계한 1950~1960년대 서양 영화배우가 뜬금없이 화제 인물로 등장한 이유는 바로 이인호 KBS 이사장 때문이다. 그는 9월 23일 전경련 주최 ‘우리 역사 바로보기’ 강연회에서 “해방 직후 박헌영의 친일파 청산은 소련의 지령 때문”이라는 요지의 발언을 했다. 이 발언은 친일청산 문제에 색깔을 들이댄 ‘새로운 이론’이어서 논란이 컸다. SNS 상에서는 “그러면 친일파 등용은 미국 지령이었냐?” “보수주의자 드골이 나치 부역자 처벌한 것도 소련의 지령이었나?” “이인호 이사장 임명은 아베의 지령에 의한 것인가?” 등등 각종 패러디와 비아냥이 넘쳐났다. 다른 한쪽에서는 친일파 조부 때문에 공직에 임용될 .. 더보기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 40년- 함세웅 신부, 늘 약자들의 구원자·치유자·해방자 지금으로부터 40년 전인 1974년 9월 23일 강원도 원주 원동성당에서 가톨릭 성직자 세미나가 열렸다. 세미나에 참석한 신부는 300여명. 이날 세미나의 분위기는 그 어느 때보다 긴장되고 무거웠다. 지학순 주교의 양심선언에 대해 사제들의 입장을 정해야 했다. 한참 토론한 끝에 마침내 결론이 내려졌다. “사제는 예언자적 입장을 지켜 시대적인 요구에 따라 희생해야 하며, 예언자적 입장에서 현실 참여에 뜻을 같이하는 신부만이라도 함께 행동해야 한다.” 1974년 창립결의문 낭독 이날 결의로 만들어진 행동하는 신부들의 모임이 곧 정의구현사제단이었다. 여기서 지학순 주교의 양심선언을 간략히 설명할 필요가 있다. 박정희 정권의 유신체제에 저항하는 학생운동이 계속되던 시절, 원주교구 지학순 주교는 가톨릭 신도이던 ..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