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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임캡슐

내란을 획책했던 새누리당 선배들

■원희복 기자의 타임캡슐(31)

내란을 획책했던 새누리당 선배들

 

 

근 30여년만에 ‘내란음모’라는 무시무시한 단어가 등장했다. 통합진보당 이석기 의원을 비롯해 민주노총 등 노동·사회단체 사람들이 한 등산 모임에서 유사시 국가 주요시설을 점거하려 했다는 것이 국정원의 주장이다. 국고보조금을 받는 공당과 현역 국회의원이 내란을 획책했다는 것인데, 그말이 사실이라면 충격적이다.

 

내란음모라는 무시무시한 범죄혐의는 1980년 당시 유력 정치인 김대중(후에 대통령 역임)에게 ‘광주 민중봉기를 통해 대한민국을 전복하려 했다’는 혐의가 적용된 이후 처음이라고 한다. 유력 정치인도 아닌 일개 전국구 초선의원이 내란을 꾀할 역량이 있는지 여부는 법정에서 가려질 일이다.

 

 

(경향DB)

 

 

전두환·노태우 시절에는 감히 내란음모 혐의를 적용하지 못했다. 하지만 박정희 정권에서 내란음모 혐의는 다반사로 적용됐다. 사진은 1967년 12월 민족주의비교연구회 사건 선고공판 모습이다. 이른바 ‘민비연 사건’이라 부르는 이 사건은 서울대 황 모 교수가 독일 유학중 북한 간첩에게 포섭돼 학생을 조직, 국가를 전복하라는 지령을 받았다는 것이다. 황 교수는 유학을 마치고 서울대 교수로 있으면서 학생들과 민족주의비교연구회라는 모임을 만들어 정부 전복 즉 내란을 꾀했다는 것이다.

 

이 사건 역시 국가정보원의 전신인 중앙정보부가 수사한 것이다. 동베를린 사건과 함께 엮인 이 사건은 재독 음악가를 비롯한 예술인, 교수, 학생, 현직 기자 등이 가담한 내란음모라는 점에서 전 국민을 경악시켰다.

 

같은 서클활동을 하다 졸업후 사회생활중 구속된 이들의 면면을 보면, 사진 오른쪽부터 이종률(당시 조선일보 기자) 김중태(당시 신민당 운영위원) 현승일(당시 서울대 대학원생) 김도연(무직) 박지동(당시 동아일보 기자) 박범진(당시 조선일보 기자)이다. 이번에 이석기 의원은 총을 마련하려 했다는데 당시에는 기자들이 펜으로 국가를 전복하려 했나보다. 펜은 총보다 강하다니까.

 

중앙정보부에서 끌려가 고문 당하며 조서를 썼던 이들은 법정에서 공소장 내용을 전면 부인했다. 결국 이 사건은 엄청난 범죄 발표와 달리 황 모 교수와 김중태 등이 2년 징역형을 받았을 뿐, 나머지 사람들은 모두 무죄로 풀려났다. 무죄를 선고한 법원 앞에 ‘용공판사 처단하라’는 대자보가 붙었지만 그래도 유신 전인 이 때 판사의 양심은 살아 있었다.

 

그런데 사진속 내란을 획책한 사람 대부분이 국가를 전복하려고(바꾸려고) 정치에 뛰어들었는데, 공교로운 것은 지금 여당인 새누리당 선배라는 점이다. 먼저 이종률은 전두환 대통령 시절 새누리당의 전신인 민정당 전국구 의원으로, 김중태는 국회의원에 몇번 낙선한 후 지난 대선에서 새누리당 선대위 국민대통합위원회 부위원장을 맡아 박근혜 대통령 만들기에 앞장섰다. 현승일은 국민대학교 총장을 거쳐 16대 한나라당 국회의원을 지냈다.

김도연은 새누리당 전신인 신한국당 국회의원에 출마했으며 김영삼 대통령시절 문화체육부 차관으로 호사를 누렸다. 박범진 역시 새누리당 전신인 신한국당 김영삼 총재 비서실장을 지냈고, 국회의원도 했다. 아마 사진속 인물 중 단 한 사람 박지동만 번역을 하며 어렵게 살다가 늙으막 지방대 교수를 지내다 얼마전 정년퇴직 했다.

 

결국 내란을 획책했다는 중앙정보부의 발표는 거짓이었다. 이 사건을 조작한 김형욱 중앙정보부장도 회고록에서 ‘잘못’을 시인했다. 그런데 당시 중정이 왜 이런 무리수를 뒀을까? 1967년 당시 박정희 대통령은 3선 개헌을 위해 국회 3분의 2 의석을 확보하려고 6·8총선에서 대대적인 부정선거를 자행했다. 야당은 무려 6개월에 걸친 등원거부 투쟁을 벌였고, 전국 대학은 시위로 대부분 휴교령이 내려졌다.

 

이런 와중에 내란음모 사건이 발표되고, 대대적인 검거선풍이 불었다. 자연히 부정선거 이슈는 사라졌다. 한참 후 국정원 진실화해위원회가 밝힌 것이지만 이 사건 모두 6·8선거부정 이슈를 잠재우기 위해 중앙정보부가 조작한 것으로 드러났다.


물론 이석기 의원과 통합진보당이 진짜 내란을 획책한 것인지는 재판을 통해 진실이 드러날 것이다. 하지만 46년전 과 지금 상황이 비슷한 것은 부인할 수 없다. 사진속 내란을 획책했던 사람들이 공교롭게 보수색 짙은 새누리당 선배였다는 것은 역사의 아이러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