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희복 기자의 타임캡슐(32)
통합진보당 이석기 의원의 내란음모 사건은 국정원 댓글 사건으로 인한 촛불정국 등 모든 정치 현안을 블랙홀처럼 빨아들였다. 위기의 국정원은 내란을 수습한다는 명분으로 국정운영의 중심에 섰다. 그나마 국정원을 수사하던 검찰은 총장의 혼외 아들설로 주춤하는 분위기다.
현역 의원의 내란음모는 아마 1966년 1월 한국독립당 김두한 의원 이후 처음 아닐까 한다. 한독당의 기원은 1930년대 상해 임시정부시절까지 올라간다. 해방 후 김구·신익희·이시영 등의 민족주의자들이 당을 재건했지만 남한만의 단독정부 수립에 반대하고 설상가상 김구 주석의 암살로 구심점이 사라졌다. 절치부심 한독당은 1965년 항일 무장투쟁 김좌진 장군의 아들인 김두한 후보를 보궐선거에 당선시켜 원내에 진출했다.
한독당이 일제시대 독립운동을 한 민족주의자들의 정당이니 박정희 대통령의 한일국교 정상화를 가장 앞장 서 반대한 것은 당연했다. 1966년 1월 8일 김두한 의원을 포함한 한독당 간부들은 5단계 혁명계획을 수립하고 정부전복을 기도했다는 내란음모 혐의로 구속됐다. 이것이 김두한 의원과 당원, 대학생들이 연계된 이른바 ‘한독당 내란음모사건’이다.
김 의원은 일제시대 헌병대 무기고를 습격하고 종로일대를 주름잡은 조직의 총수라는 전력도 있다. 게다가 해방공간에서 학도의용군 참모장, 폭력전과로 사형선고까지 받은 전력 등은 내란음모의 구체성과 현실성을 더했다. 국민은 경악했고, 언론은 이 천인공로할 사건을 연일 대대적으로 보도했다.
국가기록원 제공
사진은 1962년 3월 1일, 3·1절을 맞아 박정희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이 독립유공자를 초청해 만찬을 하고 김두한씨와 사진을 찍은 모습이다. 군복의 박 의장이 김두한씨 손을 꼭 움켜쥐고 사이좋게 사진 찍은 모습이 이채롭다. 김두한씨의 가슴에는 부친 김좌진 장군의 건국훈장이 자랑스럽게 달려 있다.
사진을 보면 박 의장이 김두환씨보다 훨씬 사진 촬영에 적극적인데 사실 그 이유가 있다. 5·16 쿠데타를 감행한 박 의장은 무엇보다 쿠데타의 정당성을 인정받는 것이 시급했다. 박 의장은 자신의 친일·좌익전력에 비추어 반공 민족주의자이며, 독립운동가 김좌진 장군의 아들 김두한씨는 최상의 홍보자료였다.
결국 박정희 대통령은 국민적 반대에도 한일국교정상화를 이뤄낸다. 그리고 자신의 정치노선에 반대한 정치세력에게 가차없이 ‘내란 음모’ 혐의를 씌웠다. 불과 몇년전 동지처럼 다정하게 사진을 찍은 기억은 없었다. 검찰은 내란음모 관련자들에게 무기징역에서 징역 3년이 구형됐다.
이에 야당 조윤형 의원(조병옥 박사의 아들)은 “소위 내란음모에 관련됐다고 하나 휴회 중에 긴급구속 할 만큼 중대한 사건이 아니다”라며 석방결의안을 제출했고, 1월 29일 국회는 재석 116명중, 가 106표, 부 9표, 무효 1표로 김 의원을 석방시켰다. 내란을 음모하다 구속된 동료 의원에 대해 결의안을 내며 석방시킨 과거 국회의원과, 동료의원을 구치소로 등을 떼민 지금 새누리당과 민주당, 정의당 국회의원과는 달랐다.
결국 그해 5월 1심 재판에서 내란음모 혐의자 대부분 무죄 판결을 받았다. 하지만 한일국교정상화를 이뤄낸 박정희 대통령에게 별로 손해는 없었다. 누구도 책임 지지 않았고, 아무도 미안해 하지 않았다. 수모를 당한 김두한 의원만 정치를 경멸하며 치를 떨었다.
결국 김 의원은 9월 22일 국회 본회의장에서 사카린 밀수사건을 거론하면서 “국민의 재산을 도적질하고 합리화하는… 똥이나 처먹어, 이 새끼들아”라고 외치며 인분을 집어던졌다. 그리고 그는 서대문 형무소에 들어가 국회의원직도 내던졌다. 그가 국회의원을 그만 둔 직접적 죄목은 내란음모죄가 아닌, 국회모독죄와 공무집행방해죄였다. 그리고 우리 정치에서 독립운동가는 사라지고 친일파들이 득세하는 시대가 됐다.
어렵게 원내에 진출한 한독당과 통합진보당, 그리고 김두한과 이석기의 운명. 이번에는 다를까, 아니면 역시나로 끝날까? 우리는 역사에서 무엇을 배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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