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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임캡슐

한광옥 국민대통합위원장이 우선 할 일

■원희복 기자의 타임캡슐(33)

한광옥 국민대통합위원장이 우선 할 일


아는지 모르지만 박근혜 정부에 ‘국민대통합위원회’라는 것이 있다. ‘내재된 상처와 갈등을 치유하고, 공존과 상생의 문화를 정착하기 위한’ 대통령 자문기구이다. 말 그대로라면 정부 기능을 뛰어넘는 이상향이 집약된 조직이다. 비록 실행력은 없지만 국민통합에 대한 기본 방향과 국가전략, 문화확산 등을 대통령에게 자문하도록 돼 있다.

 

우리와 같이 지역으로 분열되고, 부의 양극화가 극심하고, 역사 인식으로 갈등빚고, 특히 이념의 극단적 대립 상황에서 국민대통합위원회는 매우 시대 요구에 부합하는 기관이 아닐 수 없다. 한광옥 위원장이 말마따나 ‘국민대통합은 온 국민의 소원인 통일의 인프라’라는 규정은 분단국가인 우리에게 진정 소망스런 화두이다.

 

 


사진은 1985년 9월 6일 서울 안암동 고려대학교 앞이다. 왼쪽부터 한광옥 국민대통합위원장(당시 민추협 대변인)과 박찬종 변호사(당시 신민당 의원) 조순형 전 의원(당시 신민당 의원) 김병오 전 의원(당시 민추협 부간사장)이다. 비를 맞으며 주먹을 치켜들고 구호를 외치는 모습이 영락없는 투사들이다.

 

전두환 정권의 폭압에 당시 전국 대학총학생회는 전학련(전국학생총연합회)을 구성해 맞섰다. 전학련 전위조직으로 민족통일, 민주쟁취, 민중해방이라는 3가지를 망라하는 삼민투라는 전위조직이 있었다. 소위 NL(민족해방)과 PD(민중민주)계열이 단합한 아마 현 통합진보당이 분열되기 전 원조라고 할까.

 

이 삼민투가 고려대에서 학생·재야·정치권이 망라된 대규모 ‘국민대토론회’를 열었다. 당시 미국에 망명중인 DJ(김대중 전 대통령)는 YS(김영삼 전 대통령)과 함께 민주화추진협의회(민추협)을 만들어 간접적으로 정치에 참여하고 있었다. 민추협은 당시 민주화 운동의 양대 산맥인 동교동계와 상도동계의 통합체였다.

 

이날 국민대토론회에 신민당과 민추협 간부들이 참여하는 것은 재야와 대학생의 행사에 제도권 야당과 DJ·YS가 결합하는 학생·야당·재야 등 반 민주세력이 단일 대오를 형성하는 것을 의미했다. 당연히 전두환 정권은 이를 필사적으로 막았다. 고려대를 포위하고 출입자를 무차별 연행했다. 이에 야당의원과 당시 민추협 간부들이 행사장에 들어가지 못하고 정문 앞에서 비를 맞으며 시위를 벌였다. 이 시위로 현역 의원 등 많은 사람이 구속됐는데 이것이 이른바 1985년 ‘고대앞 시위사건’이다.

 

당시 같이 비를 맞으며 시위를 벌인 박찬종 의원은 그후 유력한 대통령 후보까지 오르고 지금은 정계를 은퇴한 상태이다. 지난 대선에서는 안철수 후보쪽에 관심을 많이 가졌다. 당시 초선이던 조순형 의원은 이후 무려 6선을 이어 민주당 최고위원과 당 대표까지 맡았다. 무엇보다 그는 ‘쓴소리, 바른 말하는 정치인’으로 유명했다.

 

양 김씨를 연결한 민추협은 한광옥 위원장의 정치적 모태였다. 이후 한 위원장은 DJ 아래에서 부총재, 청와대 비서실장, 노사정 위원장 등 잘 나갔다. 그리고 절묘하게 박근혜 대통령으로 ‘전향’, 지금 국민대통합위원장으로 있다.

 

민추협을 했던 동교동·상도동 사람들이 최근 민추협의 역사를 놓고 티격태격한다는 소문이다. 당시 어려운 상황에서 만든 ‘민추사’라는 책이 있는데 ‘너무 상도동계 위주로 쓰였다’는 것이다. 그래서 동교동계 인사들이 새롭게 역사를 쓰려는 데 돈을 마련하기 어렵다고 한다. 사실 반민주세력이 득세하는 지금, 민주화운동사 저술에 돈을 지원할 곳은 많지 않을 것이다.


이런 사정을 듣던 필자는 “상도동계 동교동계 잘 나갈 때 뭐하고 이제와서 역사타령, 돈 타령을 하냐”면서 면전에서 면박을 줬다. 최근 교학사 역사교과서 논란처럼 역사 문제는 중요하다. 그렇다면 한 위원장은 복잡다단한 국민의 이념적, 실제적 갈등보다 자신의 정치적 고향인 민추사 역사 문제부터 풀어야 하는 것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