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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임캡슐

28년전 국시파동 주인공의 기개

 원희복 기자의 타임캡슐(35)

 28년전 국시파동 주인공의 기개


 “우리나라의 국시(國是)가 반공입니까? …이 나라의 국시는 반공이 아니라 통일이어야 합니다.… 통일이나 민족이라는 용어는 공산주의나 자본주의보다 위에 있어야 합니다.”

 이런 발언을 요즘 현역 국회의원이 했다면? 아마 통합진보당 이석기 의원과 비슷한 ‘종북주의자’로 치부돼 국가보안법 혹은 반공법, 조금 심하면 내란죄 예비음모로 구속됐을 것이다. 

 그런데 이런 발언은 정확히 28년전인 1986년 10월 13일 국회본회의장에서 유성환 의원(신민당 경북 칠곡)이 한 발언이다. 물론 유 의원은 이 발언으로 현역의원 신분으로 구속되는 이른바 ‘국시파동’의 주인공이 됐다. 이 국시파동은 현역의원의 불체포·면책 특권에 대한 논란을 일으켰다. 특히 이 사건은 전두환 군부독재 시대, 박정희의 ‘반공을 국시의 제일로 삼고...“라는 5·16 군사 쿠데타 이후 이어진 우리사회의 금기를 깨는 중대한 의미를 가지는 사건이었다.

 얼마전 통합진보당 이석기 의원 구속 모습은 28년전 바로 이 신민당 유성환 의원의 구속모습과 너무 똑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현역의원이 국정원(당시는 안기부) 요원에 의해 수갑이 채워져 거칠게 몸싸움을 하며, 구호를 외치면서 연행되는 모습이 너무 닮았다. 그 때와 다른 점은 전두환이 국회에 제출한 체포동의안이 여당 민정당만의 날치기로 처리됐다면, 이번에는 야당도 동의해줬다는 점이다.




 사진은 구속된 유 의원이 수의를 입고 법정으로 들어오는 모습이다. 아마 이석기 의원도 이렇게 법정에 출두하는 모습이 곧 언론을 통해 공개될 것이다. 아마 다른 점은 요즘은 법정에서 수의를 입지 않기 때문에 평상복 차림이라고 할까.

 국시파동이 일어난 당시 전두환 정권의 민정당은 직선제 개헌 요구로 정권이 막바지에 몰렸었다. 대학가는 시위로 점철됐고, 이를 탄압하기 위한 공안몰이와 종북논란이 이어졌다. 국가 정보기관은 공공연히 정치에 개입하고 심지어 언론인에 대한 테러까지 자행할 정도였다. 서울 강남에 출마했던 신민당 홍사덕 의원(박근혜 대통령의 친박 핵심으로 최근 민화협 의장에 임명)에 대한 흑색선전물이 지역에 뿌려지기도 했다. 요즘 채동욱 검찰총장의 숨겨진 자식이 공개되는 것과 일면 비슷했다. 사실 홍 전 의원은 국가정보기관 공작정치의 가장 큰 피해자의 한 사람이다.

 유성환 의원은 1심 재판에서 징역 1년과 자격정지 1년을 선고받고, 9개월여 수감생활을 했다. 그리고 보석으로 풀려나와 재판을 받았다. 고등법원은 유 의원의 발언은 면책특권에 해당된다며 무죄판결했고, 1992년 대법원에서 무죄가 확정됐다. 결국 현역의원을 구속한 국시파동은 전두환 정권이 국면타개를 위한 공안몰이 혹은 종북몰이로 드러났다. 이 국시파동 판결은 근대 사법 100대 판결중 하나로 꼽는 중요한 판결이다. 

 하지만 주인공 유 의원은 이 발언으로 의원직을 상실하고 다음 선거에서 낙선하는 등 그와 야당 신민당이 당한 피해는 어디서도 보상받지 못했다. 당시 전두환 정권은 목적을 달성한 것이다. 유 의원은 한참후인 15대 국회의원 선거에 당선됨으로 겨우 정치적 사면을 받았다. 

 유 전 의원은 지난해 자신의 책 출판을 앞두고 한 기자회견에서 “우리의 모든 정책, 사회 기풍, 모든 역량을 통일에 집중할 때가 왔습니다. 우리가 추구하는 가장 위대하고, 영원한 화해는 통일입니다”라고 말했다. ‘꼴보수’ 본산으로 통하는 대구·경북(칠곡) 출신 70넘은 노정객의 통일에 대한 안목과 용기는 지금 고향 후배들이 본받아야 하지 않을까. 

 요즘 이석기 의원 사건 이후, 매카시즘·종북논란이 다시 공개를 들고 있다. 이번에 구속된 이석기 의원이 18년전 유성환 의원 사건의 전철을 밟을지는 사법심사를 통해 결정될 것이다. 그러나 정치적 목적달성을 위한 매카시즘, 종북논란을 숱하게 보아온 우리들이 우려하는 것은 이 과정에서 매몰되고 침해되는 사상과 양심·결사의 자유, 즉 우리의 기본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