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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임캡슐

정치신선? 웃기는 소리

원희복 기자의 타임캡슐(38) 정치신선? 웃기는 소리


 최근 경기 화성 보궐선거로 당선된 서청원 의원을 보고 ‘정치 신선’이라고 평가한사람이 있다. 새누리당 홍문종 사무총장이 “7선 국회의원이 되면 정치에서는 신선의 경지”라고 말한 것에서 비롯된 것 같은데, 이는 정치판 물정을 전혀 모르는 소치이다. 

  신선이라면 ‘도를 닦아 인간세계를 떠나 선계의 세계를 노니는 존재’이다. 인간세계와 신선의 세계를 넘나드는 신화의 주인공, 아니면 최소한 정치를 예술처럼 해야 한다. 그런데 서 의원처럼 세속적인 정치판에서 벼라별 잡다한 행위로 별을 둘이나 달고, 게다가 ‘친박연대’와 같은 정당도 아닌 개인 우상조직을 만든 사람을 ‘신선’에 비유하는 것은 정말 넌센스다. 

 기자는 우리 정치판에서 나름 ‘신선’ 처럼 오간 사람으로 박찬종 전 의원을 꼽는다. 한명 더 꼽으라면 바로 남재희 전 의원이다. 두 사람은 바람과 함께 왔다가 사라진, 그리고 세속과 선계를 넘나 든 정치인이라고 할 수 있다. 





 사진은 1979년 12월 민주공화당 정풍운동 모습이다. 앞에 박찬종·남재희·하대돈·유경현 의원(오른쪽부터)이 앉아있다. 모두 40내 ‘젊은 피’ 였던 이들은 ‘박정희 총재’의 공화당 1당 독재에 항의해 정풍운동을 벌였다. 이들의 정풍운동은 찻잔속의 태풍으로 끝났고, 결국 박정희 총재는 김재규 중앙정보부장의 총에 맞아 사망하면서 공화당은 몰락했다.

 이후 박찬종 의원은 대권주자에 몇번이나 오르는 ‘바람’을 일으켰지만 결정적인 ‘세’가 없어 번번히 주저앉았다. 그는 ‘정치를 바람으로 한’ 대표적 정치인이다. 삭발도 하는 등 나름 치열하게 정치를 했지만 바람처럼, 신선처럼 정치를 즐긴 인물이다. 그는 지금도 가끔 종편에 나와 소신에 찬 논평을 하고 있다. 

 남재희 의원은 이후 김영삼 정부에서 노동부장관까지 했다. 그는 매우 진보적인 글을 쓰고, 혁신적 사고를 가졌지만 보수적 정당에서 활동한 특이한 인물이다. 누구 표현대로 ‘몸은 여당에 있지만 마음은 야당’에 있던 인물이다. 지금도 진보적 글과 말을 발표하곤 한다. 기자는 이 두 사람을 ‘세력도 없이, 여야 구분도 없이 바람처럼 스쳐 지나간 정치인’ 이른바 정치에서 신선의 경지를 노닐다 간 정치인으로 꼽는다.


 정치판에서는 나름 그 ‘경지’를 구분하는 보이지 않는 기준이 있다. 기자가 한 15년전인가 재미로 구분했던 방법인데, 당시 많은 사람들이 공감했던 기준이다. 이 기준에 의하면 정치의 최고 경지는 바둑과 마찬가지로 9단이다. 보통 우리가 3김씨를 ‘정치 9단’으로 평가하는데 그 이유가 있다. 

 정치 9단은 정치의 ‘기본 좌판’인 정당을 마음만 먹으면 만들 수 있는 수준이어야 한다. 정당 규모는 적어도 원내 교섭단체(과거 기준 20석)이상이다. 우리 정치사에서 이런 규모의 정당을 허물고, 만들 수 있던 사람은 3김씨 정도이다. 1987년 이후 DJ가 대통령이 된 1997년까지 3김씨가 허물고 새로 만든 정당은 서너개씩은 될 것이다.

 물론 전두환씨도 민주정의당을 만들고, 정주영 회장도 국민당을 만들었지만 이들은 정치가 아닌 ‘총’과 ‘돈’으로 당을 만들었기 때문에 정치 고수 반열에 끼워줄 수 없다. 물론 3김씨도 지역을 볼모로 정당을 만들었기 때문에 비난의 소지가 있긴 하다. 그래도 원내 교섭단체 규모의 정당을 마음대로 만들 수 있는 정치 9단은 3김씨 이후 거의 나타나지 않고 있다. 

 다음은 8단~7단 반열로 이 사람이 깃발을 들면, 원내교섭단체는 아니더라도 나름 정당간판을 꾸릴 수 있는 정치력을 가진 사람들이다. 과거 3김씨와 맞선 김상현 전 의원이나 나름 당을 이끌었던 이회창 전 의원, 이인제 의원(과거) 등이 약한 8단 정도 줄 수 있다. 

  현역으로 지난 대선에서 민주당 당권을 놓고 줄다리기를 벌였던 안철수 의원, 번번히 대권문턱에서 주저앉은 정몽준 의원, 차기를 후보군인 박원순 서울시장, 김문수 경기지사, 홍준표 경남지사, 손학규 의원 등이 7단 정도라고 할까? 굳이 끼워준다면 서청원 의원도 7선이니 끼워줄 수 있다. 사실 ‘친박연대’라는 조직은 정당이 아닌 특정인물을 ‘사모한’ 거울조직이라는 측면에서 높게 평가할 수 없다. 자신의 정치력보다 후광을 염두에 둔 조직이기 때문이다.

 6단~5단은 확실한 자신의 정치력으로 나름 계보를 거느릴 수 있는 정치인이다. 적어도 국회의원 한둘이나 시장 몇 명에게 공천을 줄 수 있는 지분을 가져야 한다. 아니면 차기 대권을 노려 볼만한 가능성이 있어야 한다. 친박을 거느린 김무성, 친이를 대표한 이재오 의원, 과거 이회창 계보 관리자인 황우여 새누리당 대표 정도이다. 민주당은 문재인 의원이나, 정세균 의원, 김한길 대표 등은 한 6단 정도 줄 수 있다. 

  5단으로는 차세대 주자인 새누리당 남경필, 요즘 뜨는 진영 전 복지부장관 정도이다. 민주당은 안희정 충남지사, 이인영 의원, 박지원 의원, 통합진보당 이정희 대표도 소수정당이지만 확고한 기반으로 5단 정도의 정치력을 부여할 수 있겠다.

 4단은 여당의 경우 직급만 높은 월급장이 정치인 부류이거나, 야당은 최고위원급이다. 강창희 국회의장이나, 이병석·박병석 부의장도 비슷하다. 총리를 지냈지만 정치력이 낮아 이해찬 의원도 4단 정도이다. 새누리당에서는 원유철, 유정복, 유승민, 원희룡, 오세훈(맛이 좀 갔지만) 야권에서는 박영선, 추미애, 신경민, 우상호, 정청래, 심상정, 노회찬 정도이다.

 3단은 3선 이상으로 당내 기반이 확실하며 상임위원장급이다. 사실 이 정도 오르기도 쉽지 않다. 영남출신 새누리당이나, 호남출신 민주당 의원은 공천이 곧 당선이라는 측면에서 정치단수를 높게 평가 할 수는 없다. 그래서 수도권에서 2~3선을 쌓은 정치인의 정치단수가 더 높다. 

  2단은 적어도 지역구에서 한번이라도 당선된 정치력을 가진 의원이다. 이들은 최소한 논두렁 정기라도 타고난 비범한 인물이다. 비례대표 의원이나, 기초자치단체장은 정치 초단 정도를 부여할 수 있다. 당직자들은 단이 아니라 급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