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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임캡슐

심기경호? 비극의 씨앗

■ 원희복 기자의 타임캡슐(40)

심기경호? 비극의 씨앗

 

요즘 정치권에서는 민주주의 후퇴, 과거로 회귀라는 말이 공공연하다. 불행한 것은 재론되지 않아야 할 용어까지 다시 등장하는 것이다. 그중 대표적인 것이 바로 심기경호라는 용어이다. 이 말은 1974년 차지철 경호실장이 취임하면서 경호실은 대통령의 신변을 경호하는 데 그치지 않고 심기까지 경호해야 한다며 주창한 것이다. 절대 권력자의 심기를 불편하게 만드는 요인까지 제거해야 한다는 이 무서운 논리로 차지철 경호실장은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둘렀다.

 

사진은 바로 그 심기경호의 주인공들이 공교롭게 카메라 한 앵글에 잡힌 모습이다. 1976년 청와대 경호실 훈련장 준공식에서 박정희 대통령과 차지철 경호실장이 나란히 테이프 커팅을 하고 있다. 그런데 두 사람 뒤에 부동자세로 서 있는 사람이 전두환 당시 경호실 차장보이다.


사실 전두환은 누구보다 박정희 대통령으로부터 총애를 받은 사람이다. 전두환은 당시 청와대에서 사실상 퍼스트레이디 역할을 하던 박근혜씨와 잘 알았을 것이다. 게다가 그 역시 차지철 밑에서 심기경호를 빙자한 무소불위의 경호실 권력을 만끽했던 인물이다.


그런데 40년이 지난 엊그제, 까마득하게 잊혀졌던 이 심기경호라는 말이 다시 튀어 나왔다. 지난 1111일 박혜자 민주당 최고위원이 심기경호라는 말을 꺼냈다. 박 최고위원은 요즘 벌어지고 있는 심기경호의 구체적 예를 다음과 같이 들었다.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심기경호의 특징은 국가기관의 조직적인 대선개입에 대해서 돌직구를 날린 사람들을 희생양으로 삼아서 공개적으로 모욕을 주고 있다는 것이다. 더 이상 침묵하지 말고 박근혜 대통령이 나서야 한다고 했던 문재인 의원은 검찰의 소환조사를 받았고, 선거법을 적용한 채동욱 검찰총장은 찍어내기를 당했다....경찰의 축소 은폐를 제기했던 권은희 과장과 국정원의 추가 범죄를 밝혀냈던 윤석열 지검장은 징계를 당했다. 심지어 파리와 런던에서 시위한 현지 교민과 유학생들은 대통령을 수행했던 새누리당 김진태 의원에게 댓가를 치르겠다는 겁박까지 받고 있다.”


박 대통령의 유럽순방 중 프랑스 파리에서 시위를 벌인 교포에게 반민주적 발언을 한 새누리당 김진태 의원이 요즘 심기경호실장으로 뜨고 있다. 사실 이 발언은 논리가 결여된 것은 물론, 무식의 소치를 넘어 프랑스와 외교문제까지 일으킬 수 있는 사안이다.


비단 이 뿐일까? 청와대의 심기경호의 시작은 이남기 홍보수석이 윤창중 대변인의 국제적 성추행사건 때 국민에 대한 사과가 아닌 권력자에 대한 사과를 하면서부터 알아봤다.  당시 홍보수석의 행태는 그의 임무가 국가홍보가 아닌, 권력자의 심기홍보가 우선이었음을 드러낸 것이다.


무엇보다 지난 대선 TV토론에서 가장 거세게 박 후보를 몰아세웠던 통합진보당 이정희 대표에게 정당해산이라는 보복조치를 취한 것은 심기경호의 극치이다. 여인네가 한을 품으면 오뉴월에 서리가 내린다고 했는데. 박 대통령이 얼마나 한이 맺혔으면 법무부가 이런 조치까지 취했을까?


하지만 권력자의 심기를 위무하는 것도 좋지만 이건 너무 나갔다. 아무리 권력자의 심기를 경호하더라도 헌법과 시대흐름을 감안해야 하는데, 이건 아니다. 사법부나 헌재를 자신의 의지 대로 할 수 있다는 40년전 사고에 머물러 있지 않으면 할 수 없는 일이다.


무엇보다 심기경호의 종말은 어떠했는가? 박 최고위원은 심기경호가 강화될수록 정권은 민심과 멀어질 뿐이라며 이것이 그동안 우리가 경험한 역사의 교훈임을 기억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박 최고위원의 이런 지적은 굉장히 점잖게 표현한 것이다.


심기경호는 잠시 권력자의 마음을 편안하게 만들었을지 몰라도 문제해결은커녕 사태를 더욱 악화시켰다. 심기경호는 권력을 비판하는 언론, 출판, 집회, 결사의 자유를 억압하고, 정적을 투옥시키거나 목숨까지 빼앗는 탄압으로 이어졌다. 결국 이런 반민주, 독재는 국제적 고립으로 이어지면서 스스로 붕괴했다. 심기경호의 주역인 사진 속 박정희, 차지, 전두환의 마지막이 어떠했는지 우리가 보지 않았나. 


일시적으로 권력자의 마음을 위무하는 심기경호는 분명 비극의 씨앗이다. 부친을 비극으로 내 몬 심기경호라는 단어가 40년 후 딸의 시대에 다시 등장하는 것은 본인은 물론, 국민 모두에게 비극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