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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장 편지

이명박 대통령이 잊고 있는 것

촛불의 기세에 눌려 노심초사하던 이명박 대통령이 요즘 신이 나 보입니다. 하기야 촛불집회도 잠잠해졌겠다, 그 눈엣가시 같은 PD 수첩도 사과하고 제작진이 모두 바뀌었겠다, 임명권자를 몰라 보고 아픈 곳을 쿡쿡 찌르던 공영방송 사장도 잡아 가두었겠다…….

이 대통령은 요즘 이런 생각을 하고 무릎을 치며 좋아할지 모릅니다.
“거 봐라. 역시 물대포와 경찰 특공대가 효과가 있어. 촛불집회에 미온적으로 대처한 서울경찰청장을 진작 바꿨어야 했는데, 공영방송과 관영방송이 무슨 차이가 있다고 그래. 감사원과 검찰, KBS이사회도 잘했지. 세계에서 유례가 없는 인터넷 댓글 실명제를 도입해 네티즌의 ‘주둥이’를 막아버린 방송통신위원회도 수훈갑이야.”

요즘 이 대통령의 행동을 보면 자신감이 묻어납니다. 국무회의에서 농담도 나온다고 합니다. 촛불정국 이전, 대통령 선거에서 최다 득표 차이로 승리하고 게다가 총선에서 압도적 다수당이 됐다는 자신감을 다시 찾은 것 같습니다. 청와대 관계자는 대통령은 이제 법과 원칙을 지키며 미래를 향해 자신의 길을 걷겠다고 전했습니다.

그렇습니다. 법대로 해야 합니다. 도로를 점거한 촛불집회 참석자는 도로교통법 위반입니다. 외국에서는 일반화했지만 특정 상품을 배척하는 소비자 운동도 업무방해죄 혹은 명예훼손죄로 처벌할 수 있을 겁니다. 적자를 낸 공영방송 사장은 업무상 배임죄로 잡아 가두면 되고 번역 오류는 방송법 위반으로 제작자를 단죄하면 됩니다.

이번 호 뉴스메이커에서는 바로 그 범법자인 도로교통법 위반자의 이야기를 또 담았습니다. 의도는 꺼져가는 아니, 진화하는 촛불의 의미를 새겨보기 위함입니다. 그런데 요즘 분위기라면 혹시 범법자에게 의미를 부여하는 행위가 죄가 되지 않을까 모르겠습니다.

한때 맹렬하게 좌파 활동을 했던 한나라당 차명진 대변인은 ‘좌파의 극렬 선동’ 운운하더군요. 그런 맥락이라면 국가보안법의 한 조항처럼 범법자 찬양고무죄를 만들면 여타 언론 문제가 깔끔하게 해결되지 않을까요. 원 구성도 안 한 국회는 국회법 위반으로 금배지를 떼버리고 국회의원이 탱탱 놀면서도 세비를 꼬박 받았다면 업무상 횡령죄로 기소하는 것은 어떻습니까. 골치 아픈 인터넷 댓글을 막기 위해 댓글 실명제라는 기발한 제도를 도입한 세계 유일의 국가가 뭘 못하겠습니까. 국회도 압도적 다수를 차지하고 있는데 무슨 법인들 못 만들겠습니까.

하지만 이 대통령이 모르는 게 있는 것 같습니다. 도로교통법보다, 배임죄나 업무방해죄보다 더 중요한 법이 있습니다. 그것은 헌법입니다. 바로 그 헌법에 명시된 표현의 자유, 언론의 자유, 양심의 자유는 인간의 기본권입니다. 이 대통령은 바로 6개월 전 “나는 헌법을 준수하고……”로 시작하는 취임 선서를 했습니다. 이 대통령의 지금 모습은 불과 6개월 전 국민 앞에 엄숙히 선서한 의미를 까맣게 잊고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국민에게 참 불행한 일입니다.

<원희복 편집장 wonhb@kyunghyang.com>

2008/08/26 (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