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감이 넘치는 사람에게 속된 말로 ‘간이 배 밖으로 나왔다’고 한다. 간이 배 밖으로 나올 정도로 자신감이 넘치는 상태라는 것이다. 자신감에 관한 한 변희재 전 <미디어워치> 대표도 둘째 가라면 서러워 할 사람이다. 그는 자전적 에세이집 <변희재의 청춘투쟁>을 쓰고 7월부터 사인한 책을 예약 판매하는 일에 바쁘다. 나이 40대에 자서전을 쓰고 사인까지 해 파는 것은 웬만한 ‘스타’가 아니면 생각하기 어려운 일이다.

진보논객 진중권에 통쾌한 복수
그는 선배이자 진보논객(‘입진보’라는 평가를 받긴 하지만)으로 꼽히는 진중권 동양대 교수를 KO시킨 이후 ‘물 만난 고기’가 됐다. 진중권과 대결에서 승리한 후 뭐가 달라졌냐는 질문에 그는 “유료구독자가 많이 늘었다”고 우쭐한 표정을 짓기도 했다.(여기에 대해선 약간의 설명이 필요하다. 보수논객 변희재와 진보논객 진중권은 2012년 11월 11일 ‘사망유희’(死亡遊戱-Game of Death-죽음의 게임) 토론을 벌였다. 이 때 변희재는 공세적 질문으로 진중권을 몰아붙였다. 토론이 끝나고 진중권은 “변희재가 오늘은 토론준비를 철저히 해왔더군요. 팩트에서 밀렸습니다. ㅜㅜ 아무튼 오늘만은 그 친구를 칭찬해 주고 싶습니다”라고 사실상 패배를 인정했다. 하지만 나중에 이 토론에서 변희재의 주장은 사실과 다르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이상훈 선임기자



‘말빨’, ‘글빨’로 이름을 날리던 진중권이 ‘죽음의 토론’에서 패배를 자인했다는 사실은 금세 세상에 퍼졌다. 이것은 변희재 입장에서 2009년 진중권으로부터 ‘듣보잡’(듣보 보도 못한 잡놈의 준말)이라고 수모를 당했던 것에 대한 통쾌한 복수였다. 싸움에서 이긴 변희재는 케이블TV는 물론, 공중파 방송 TV토론에서 ‘러브콜’을 받았다. 얼굴 잘 팔리는, 이른바 ‘잘 나가는 논객’으로 등극한 것이다. 패한 진중권은 변희재 표현대로 ‘힘이 많이 빠진’ 상태로 전락했다.

이런 여세를 몰아 변희재는 대권주자인 안철수에 대해서 검증과 소송을 벌이겠다고 나서고, 이재명 성남시장은 물론, 심지어 박원순 서울시장에게도 공개적으로 시비를 거는 ‘거물’이 됐다.

부분적 사실을 전체의 진실로 유도
현재 그는 <미디어워치>라는 인터넷 비평지 발행인(언론인은 정치활동을 못하게 돼 있어 현재 발행인직에서 사임했지만 경영은 그대로 하고 있다)이다. 그리고 이른바 ‘실크세대’의 선두주자임을 자처하고 있다. 그의 실크세대론이란 이른바 ‘88만원 세대’로 불리는 불행한 세대가 아닌 대중문화와 IT로 무장하고, 한류문화를 전파하는, 과거 동서양 교역의 통로인 실크로드에 빗댄 실크세대라는 것이다. 여의도에 번듯한 사무실을 내고 4~7명의 직원을 거느리며 바쁘게 사는 것을 보면 ‘외형적으로 성공한 실크세대’로 보인다.

하지만 기성 언론에서 변희재는 ‘연구할 대상’이긴 하지만 ‘평가할 만한 인물’로 쳐주지 않는다. 언론사 시험에 계속 떨어진 비주류의 한(恨) 또는 ‘곤조’(근성·根性의 일본식 비속어)로 뭉친 반항아 정도로 생각한다. 심지어 야당과 진보진영에서 그는 아예 상대하고 싶지 않은 인물, 혹은 언급하고 싶지 않은 일종의 기피대상으로 취급된다. “×이 무서워 피하냐, 더러워 피하지”라는 식이다. 이재명 성남시장은 최근 그를 형사와 2억원의 민사소송을 함께 제기하며 “더럽다고 피하고 화합명목으로 또 용서하니 추악한 흑색선전은 저들의 전매특허가 됐다”며 “힘들고 더러워도 누군가는 쓰레기를 치워야지요”라고 그를 쓰레기에 비유하기도 했다.

그래서일까. 요즘 그는 나름 철학적·이론적 논리를 갖추기 위해 열심히 노력한 흔적이 엿보인다. 그는 존 스튜어트 밀(자유론을 저술한 영국의 철학자)과 같은 고전적 자유주의자를 자주 인용한다. 스스로 자신은 존 스튜어트 밀과 같은 삶을 살고 있다고 주장한다.


2012년 11월 11일 북방한계선(NLL)을 놓고 진보 논객 진중권(사진 오른쪽)과 벌인 사망유희 토론은 변희재를 ‘스타’로 만든 계기가 됐다. | 곰TV 캡쳐



그는 기자와 만나자마자 문창극 낙마 사태에 대해 “보수가 뒤집어졌다”라며 흥분했다. 그는 “문창극만한 자민족·자국가 우월주의자가 없다”고 주장했다. 기자가 “문창극 교회강연 영상을 보면 한민족 비하, 서양 선교사 찬양으로 일관돼 있지, 무슨 한민족 우월 대목이 있느냐”고 물었다. 그러자 변희재는 “강연의 마지막 5분을 봐야 한다. 미국을 대신할 강대국 코리아라는 것이 강연의 결론이다”라고 강변했다. 그러면서 그는 “MBC에서 이 대목은 틀지

않았다”고 말했다.

실제 문창극의 강연 마지막에 그런 대목이 있는지 모르겠지만, 많은 사람들은 강연의 전체 맥락을 ‘한민족 비하, 서양 선교사 찬양’으로 생각하고 있다. 그러나 변희재는 마지막에 언급한 ‘사실’이 결론이며 전체의 진실이라고 믿고 있다. 이렇듯 변희재는 자신만의 독특한 관점을 강조하고, 이를 합리화시키는 데 매우 능숙했다. 이는 TV토론이나 실시간 인터넷 논쟁과 같이 순발력이 필요한 ‘야전 토론회’에서 갈고 닦은 기술로 보인다. 부분적 사실을 전체의 진실로 유도하고, 이를 통해 상대를 제압하는 능력이다.


이런 모습은 종북에 관한 대화에서도 똑같이 엿보였다. 그는 몇몇 인사를 북한을 추종하는 ‘종북주의자’로 규정했다가 손해배상 소송을 당하기도 했다. 그래서인지 그는 “앞으로 종북주의자가 아닌 수북(守北·북한을 지키는 세력)이라고 부르고 싶다”고 말했다. 그 이유에 대해 변희재는 “박지원, 안철수, 문재인은 북한 김정은 체제가 유지돼야 대한민국이 안전하다고 믿는 세력이다. 그들은 분명히 그렇게 말했다”고 주장했다.


기자가 “물론 박지원, 안철수, 문재인이 어떤 자리에서, 어떤 언론과 그런 말을 했을 수 있다. 그 사람들이 북한체제가 안정돼야 한다는 말의 의미는 우리 정부의 통일론이 평화 정착에서 남북 교류·협력을 거쳐 통일국가로 가는 것이기 때문에 지금은 서로의 체제를 인정해야 하는 단계라는 뜻으로 이해해야 하는 것 아닌가, 전후 맥락을 끊고 북의 존재를 인정한다고 수북세력으로 모는 것은 우리의 통일정책을 부정하는 것 아닌가”라고 되물었다.


그러자 그는 “북한을 별도 국가로 인정할 수 없다. 그건 헌법위반이다”라고 대답했다. 보수가 주장하는 무력통일이나 급격한 흡수통일 역시 평화통일을 규정한 헌법 위반이라는 사실에 대해서 그는 외면한다. 변희재 역시 남북관계와 통일문제를 너무 단편적, 혹은 근시안적으로 보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항상 여권에 머물러 있는 순발력
변희재는 언론에도 여야가 있다면 ‘여권’의 편에, 권력이라면 ‘권력자’의 편에 서 있다. 그것도 보수 제도권 언론보다 훨씬 극우적이고, 혹은 권력편이다. 사실 그는 김대중 정권에서 <인물과 사상>이라는 열렬한 친 DJ 매체에서 활동했고, 노무현 정권에서도 역시 <서프라이즈>라는 친노 매체에서 활동했다. 그는 이명박 정부 들어 <미디어워치>라는 보수 매체로 ‘전향’했고, 지금 박근혜 정권에선 종북몰이에 앞장서고 있다.

그렇다. 그는 항상 ‘여권’에 있었다. 젊은 언론사업가가 항상 여권에 있었다는 것도 연구대상이다. 이런 변신 역시 말과 짧은 글로 승부가 나는 TV와 인터넷 토론에서 갈고 닦은 순발력 덕분인지 모른다. 전체 맥락에 대한 이해를 스스로 거부하고 단편적 워딩으로 상대의 허점을 치고 들어가는 검투사적 능력 때문에 빠른 변신도 가능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가 10여건의 소송을 당하면서도 계속 싸울 수밖에 없는 ‘검투사적 운명’이라는 것에 한편으로는 안쓰러운 생각마저 든다.


7월 발매하는 자전적 에세이집 <변희재의 청춘투쟁>


“나는 전향한 것이 아니라 진영이 바뀐 것이다”


40대에 자서전을 쓴 이유는 무엇인가. 자신감의 표현인가.
“포털에 나와 관련된 기사가 8900건이다. 그 중 절반이 잘못된 기사다. 대표적인 것이 대학 때 좌익운동을 하다 전향했다고 하는

데 나는 전향한 적이 없다. 전향이라는 것이 원래 뭐였는데 뭐로 바뀌어야 하는 것 아닌가. 나는 대학 때 고전적 자유주의자인 존 스튜어트 밀의 신봉자였고, 지금도 그렇다. 단지 진영(정치 지형)이 바뀐 것이다. 내가 전향한 것이 아니라 진영이 바뀐 것이다.”


김대중, 노무현 정권을 거치며 항상 정권의 진영에 섰다. 젊은 언론인이 너무 시류를 타는 것 아닌가.
“DJ를 지지한 것은 DJ노믹스에 찬성해서였다. 나는 자유주의자로 금융개방, 공기업 민영화를 주장했다. 노무현을 지지한 것 역시 경제적 측면인 FTA를 지지해서였다. 그런데 DJ와 노무현은 잘못했다.”

DJ와 노무현이 뭘 잘못했는가.
“햇볕정책의 당근이 북한 핵개발을 만들었다. 나는 DJ와 노무현이 북한 체제를 지탱해준 세력이라고 본다. 종북세력이 북한과 연계돼 있다는 것은 법원 판결문에 다 나와 있다.”

법원 판결을 다 믿는가. 종북몰이와 비슷한 과거의 용공조작 사건들이 지금 재심을 통해 하나둘씩 무죄로 드러나고 있다. 그것도 고문으로 간첩을 조작한 것으로 드러나고 있다.
“….”(아무 대답을 못했음)

자유주의자라면서 왜 사람들을 종북이라는 이념의 틀에 가두려 하는가.
“난 용어규정을 해야 한다고 본다.”

쭉 언론비평 매체를 만들었다. 대학졸업 후 언론사 시험에 떨어지자 비주류 미디어를 만들고, 미디어평론을 하는 것은 일종의 주류언론에 대한 콤플렉스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 언론사 시험은 몇 번 떨어졌나.
“난 대학에서 <대자보>라는 언론사업을 한 사람이다. 난 대학 때 언론사 시험을 보지 않았다. 사업에 실패해 딱 한 군데 시험을 본 적

이 있다. 인터넷언론 <프레시안>이다.”

이상훈 선임기자


계속 언론 관련 일을 했는데, 본인의 언론관은 무엇인가.
“기자의 임무가 권력 감시라고 하는데, 참 우습다. 언론이 무슨 자격으로 권력을 감시하냐. 권력을 감시하려면 감사원에 들어가야지. 법에 그렇게 돼 있지 않나.”

권력은 꼭 정부만 있는 것이 아니라, 재벌권력도 있고, 사회권력도 있고, 심지어 조직폭력의 권력도 있다. 감사원이 그런 것을 감시할 수 있나? 언론도 사업이다. 지금 경영은 되는가.
“유료독자가 5000명 정도로 연간 2억~3억원 들어온다. 그런데 비용은 4억 정도 쓴다. 나머지는 광고로 메워야 하는데, 박근혜 정부 들어 정부 광고를 전혀 주지 않는다. 이명박 정권 때는 <미디어오늘>의 3분의 1 정도 정부 광고를 받았다. 그런데 이 정부 들어선 <미디어오늘>이 130건 받았을 때 우린 단 3건 받았다. 왜 안 주냐고 따져도 대답이 없다.”

자전적 에세이집에 ‘청년 언론인’ ‘청년 기업가’ ‘청년 정치인’ 대목이 있더라. 정치를 하려는가.
“이번 문창극 낙마 이후 사이트에 ‘정치를 하자’ 심지어 ‘창당하자’는 얘기도 많이 올라온다. 주변을 보면 많은 정치논객이 정치에 줄을 대고 있다. 하지만 나는 조선일보를 능가할 플랜을 짠 사람이다.”(안 하겠다는 말은 끝까지 하지 않았다)


<원희복 선임기자 wonhb@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