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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장 편지

에밀 졸라의 심정으로

“대통령 각하, 진실은 단순한 것입니다. 그리고 이 무시무시한 진실은 당신의 통치에 지울 수 없는 오점을 남길 것입니다….”
1898년 프랑스 소설가 에밀 졸라가 신문에 기고한 그 유명한 ‘나는 고발한다’의 한 대목입니다. 독자 여러분이 잘 알다시피 에밀 졸라의 이 도발적인 글은 드레퓌스 사건의 진실을 고발하는 글입니다. 아니 진실을 은폐하고 호도하려는 권력에 정면으로 반기를 든 선전포고장입니다. 에밀 졸라의 이 도발적인 글은 프랑스 지성과 사회, 권력, 그리고 역사를 뒤흔들었습니다. 전 세계에 진실이 무엇이며, 지성인의 역할과 권력의 본질을 일깨웠습니다.

요즘 대한민국을 보면 에밀 졸라가 그렇게 절규하듯 고발했던 사건의 진실과 지성, 그리고 권력을 다시 생각하게 합니다. 야간에 촛불을 들고 시위를 했다는 이유로 사법처리되는 촛불 소녀, 낙하산 인사를 반대했다는 이유로 해직되는 기자, 인터넷에 경제 위기를 조장하는 글을 썼다고 구속된 미네르바, 소비자 권리 찾기 운동을 하다 잡혀 간 가정주부, 오히려 범법자로 뒤바뀐 용산 참사 희생자…. 경제 장관이 바뀌니 경제성장률 예측치가 5% 포인트 등락하는 후진성은 논외로 칩시다. 시위 때 마스크를 쓰면 죄가 되고, 여러 사람이 움직이면 떼법이라며 그 피해를 배상해야 하고, 세계적으로 폐기되는 모욕죄는 ‘사이버’라는 단어까지 달아 화려하게 부활하는 법을 만들고 있습니다. 그 과정에서 언론의 자유, 표현의 자유, 집회 및 결사의 자유 같은 기본권과 학문의 중립성, 국민의 생존권 등은 무시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국민은 무엇이 진실이고 양심이고 원칙인지 헷갈립니다. 정치권도 언론도 논란만 부축일 뿐 진실과 양심, 원칙을 말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에밀 졸라가 고발했을 당시에도 대부분 언론은 드레퓌스를 범인으로 몰았으며 진실이 무엇이냐에 대한 본질적인 고민은 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에밀 졸라가 절규하며 고발했던 것처럼 ‘공화국 이명박 대통령’에게 공개적으로 고발하는 기획을 마련했습니다. 에밀 졸라 역할을 한 사람은 각계의 저명한 학자입니다. 우리는 되도록 연구소와 강의실에서 학자적 양심을 가진 분을 엄선했습니다. 정파적으로, 심지어 특정 시민단체에 가입한 교수도 될 수 있으면 배제했습니다. 에밀 졸라가 그랬던 것처럼 진실과 학문의 양심적 측면에서 대통령에게 고발하도록 했습니다.

이번 호에서 이명박 정부의 진실과 양심과 권력을 평가하십시오. 이번 호 표지 디자인도 에밀 졸라가 고발했던 그 <로로르>지를 그대로 모방했습니다. 에밀 졸라는 이 글을 쓰고 법정에 섰지만 굴복하지 않았습니다. 편집장인 저는 에밀 졸라가 “저는 최후의 승리를 추호도 의심하지 않습니다. 더욱 강한 확신으로 말씀드립니다. 진실이 전진하고 있고, 아무것도 그 발걸음을 멈추게 하지 못할 것입니다”라고 한 말에 전적으로 공감합니다. 에밀 졸라는 또 이렇게 예견했습니다.

“진실이 땅 속에 묻히면 그것은 조금씩 자라나 엄청난 폭발력을 얻어 마침내 그것이 터지는 날, 세상 모든 것을 날려보낼 것입니다.”

<원희복 편집장 wonhb@kyunghyang.com>

2009/02/24 (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