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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장 편지

우리 시대의 사이코패스

연쇄살인범 강호순이 붙잡혔습니다. 범죄 전문가들은 강호순을 과거 연쇄살인범과 유형이 다른 사실상 우리나라의 첫 서구형 사이코패스라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사실 강호순을 보면 빈곤 때문이라거나 반사회적 정서 등 과거 범죄 원인과 달리 단지 ‘즐기기’ 위한 인격장애적인 범죄라는 생각이 듭니다.

전문가들은 사이코패스의 특징으로 죄의식이 없고, 거짓말을 잘하며, 이기적이고 영리하며, 양심과 감정이 결여됐고, 폭력적이라는 데 공통점을 주고 있습니다. 이런 판단을 근거로 실제로 사이코패스냐 아니냐를 검증하는 표까지 있습니다. 얼마 전 한나라당 전여옥 의원이 야당 의원을 사이코패스에 비유해 논란이 일었습니다. 그는 해머질을 하고 동료 의원의 명패를 내던진 야당 의원을 반의회적이고 반민주적인 인격장애자, 사이코패스로 비유했습니다. 앞서 전문가의 지적대로 사이코패스가 폭력적이라는 점에서 조금은 맞는 말입니다.

이에 진중권 교수가 조목조목 반박했더군요. MB 정권이야말로 사이코패스라고. 진 교수는 타인의 감정을 배려하지 않는 철거민에 대한 가혹한 태도와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않는 점, 위력을 과시하기 좋아하는 점에서 꼭 사이코패스를 닮았다고 지적했습니다. 독자 여러분의 생각은 어떻습니까. 전여옥 의원에 공감합니까 아니면 진중권 교수에 공감합니까. 여론조사라도 한 번 했으면 좋겠습니다. 편집장인 저는 99.9% 진 교수의 입장에 공감합니다.

뻔히 용역 직원을 동원했고 당사자도 본인이라고 시인했는데 아니라고 우기는 경찰과 검찰의 초기 수사 태도를 보면 “탁 치니 억 하고 죽더라”보다 더 거짓말을 잘하는 사이코패스적 모습 아닙니까. 시행자인 거대 건설업체는 돈 주고 용역업체에 의뢰해도 되고 힘없는 철거민은 전철협에 도움을 받으면 왜 안 됩니까. 합법적 영업을 방해한 용역 직원은 버젓이 거리를 활보하고 피해자인 철거민은 구속되는 것이 논리에 맞습니까. 화염병과 물보다 가벼운 인화물질이 가득한 곳에 물을 뿌리는 행위가 불난 집에 부채질하는 것과 물리적으로 뭐가 다릅니까.

이건 고차원적 이념의 문제도, 해묵은 색깔의 문제도, 어떤 관점의 문제도 아니고, 상식이고 물리고 이치고 논리의 문제입니다. 천만 번 양보해 범죄자도 아닌 정부가 상식과 논리가 통하지 않으니 어찌합니까. 많은 사람이 이명박 정부의 국정 운영을 지적하다 못해 체념하고 절망하는 이유가 이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까.

이번 주 [Weekly경향]은 사이코패스 강호순을 면밀히 따져봤습니다. 그가 어떻게 살아왔고 어떤 이유와 조건에서 범죄에 빠졌으며 어떤 결과를 낳았는지 지극히 상식적으로 따져봤습니다. 사이코패스 전문가 헤어 박사는 “상대를 이해하는 감정 없이 경쟁만 가르치는 사회, 이기는 자만이 추앙받는 사회에서 사이코패스는 필연적”이라고 지적합니다. 정확히 지금 우리의 폐부를 찌르는 말입니다.

<원희복 편집장 wonhb@kyunghyang.com>

 2009/02/17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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