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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장 편지

다수결이 만능은 아닙니다

기자를 하다 보면 필화 사건 혹은 언론 탄압 역사를 자연스레 공부하게 됩니다. 글을 쓰는 입장에서 어떤 글이 문제가 되는지 알아야 하기 때문이지요. 언론사(史)에서 대표적 필화 사건으로 1962년 <동아일보> ‘국민투표는 만능이 아니다’라는 제목의 사설을 꼽습니다.

당시 박정희 장군은 대통령중심제 제3공화국 헌법을 발의하고 직접 국민에게 의사를 묻겠다고 나섰습니다. 데모크라시, 말 그대로 국민에게 주권이 있으니 국민에게 직접 의사를 묻는 것이 민주주의라는 논리지요. 이에 <동아일보>가 문제를 제기하자 박 장군은 사설을 쓴 논설위원과 주필을 구속했습니다. 물론 이 헌법개정안은 국민투표에서 85%가 넘는 투표율과 79% 가까운 찬성으로 통과됐지요.

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박 정권은 국민투표를 만병통치약인 양 사용했습니다. 1972년 영구 집권을 명문화한 유신헌법도 마찬가지입니다. 박 대통령은 탱크로 국회를 해산시키고 유신헌법을 발의했습니다. 자신이 만든 제3공화국 헌법을 위반한 것이지요. 그리고 유권자의 91.9% 투표, 투표자의 91.5% 찬성으로 유신헌법을 통과시켰습니다. 비록 국민의 다수결로 통과됐지만 그후 사가들은 이 유신기간을 권위주의 혹은 독재정권이라고 평가합니다. 나폴레옹이 공화정을 무너뜨리고 황제로 즉위한 것도 국민투표를 통해서였고, 히틀러나 무솔리니도 국민투표를 거쳐 정권을 잡고 운영했습니다. 하지만 후대 사가들은 이를 올바른 민주주의로 평가하지 않습니다.

왜일까요. 민주주의에서 다수결은 필수불가결한 것이지만 그것만 전적으로 옳지 않다는 것, 자유롭게 반대하고 토론하는 절차적 민주주의도 존중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기자가 중학교 사회 선생님을 잠깐 해봐서 아는데 이건 중학교 1~2학년에는 꼭 가르쳐야 하는 것입니다(사실 이건 가르쳐주지 않아도, 꼭 시험에 나오지 않더라도 조금만 영리한 학생은 다 압니다).

그런데 요즘 바로 이 중학교 사회 문제 수준을 놓고 온 나라가 난리입니다. 국민의 기본권을 제한하는 각종 법안이 절차도 밟지 않은 채 국회에 회부되고 이를 놓고 여야가 거의 전쟁을 벌이고 있습니다. 비관적인 경제 전망을 했다고 허위사실 유포로 구속됩니다. 그래도 모두 자신이 ‘진정한 민주주의’라고 주장합니다. 어떤 국회의원은 “대한민국 민주주의는 지금 회생하기 힘든 상처를 입었다”고 인터넷에 글을 올렸다 크게 ‘망신’을 당하기도 했습니다(이 국회의원이 기자 출신이라는 것이 같은 기자로서 창피합니다만).

그래서 우리는 초심으로 돌아갔습니다. 초등학교, 중·고등학교 교과서, 정치학 개론서 그리고 헌법을 다시 들춰봤습니다. 이 시대가 합의한 최고의 정치적 컨센서스를 명문화한 것이 바로 헌법입니다. 헌법은 국민의 기본권을 열거하고 그 기본권을 보장하기 위한 정부의 역할을 명시한 최고의 법입니다. 그 바탕에서 민주주의가 무엇인지 다시 생각해봤습니다.

이번 호 Weekly경향을 통해 혼란스러운 현 시국을 보는 맑은 눈을 가지십시오. 그리고 지금의 이명박 정부를 판단하십시오.


<원희복 편집장 wonhb@kyunghyang.com>

2009/01/20 (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