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일 저녁 서울 종로구 인사동 식당가에서 큰 불이 났습니다. 비상구도 제대로 갖춰지지 않은 낡은 목조건물에 불이나면 대피도 어렵습니다. 게다가 소방차가 들어갈 수 없는 좁은 골목길에 쌓여있는 석유액화가스(LPG)통은 지뢰밭, 그것입니다. 이날 화재도 부탄 가스통이 펑펑 터져 많은 사람이 경악했습니다. 그나마 휴일 많은 사람과 관광객이 있었지만 인명피해가 크지 않아 다행입니다.
지난 14일 본란은 ‘박근혜 당선인님, 소방관을 살려주십시오’라고 읍소했습니다. 박 당선인이 이 목소리를 들었는지 모르지만 전국의 소방관들이 “고맙다”는 이메일만 잔뜩 보냈더군요. 유정복 안전행정부 장관 내정자는 이 목소리를 들을 것으로 기대합니다.
본란이 안전에 대해 조금 길게 얘기하는 이유는 지금 정부조직 개편작업이 진행되고 있으며, 또 행정안전부를 안전행정부로 바꾸는 등 새 정부가 ‘안전’에 대해 굳은 의지를 보이고 있기 때문입니다. 안전에 대한 기본 틀을 다시 짜는 지금, ‘일을 하려면’ 제대로 했으면 하는 생각에서 말하는 겁니다.
17일 서울 인사동 식당 밀집지역에서 불이 나자 소방대원들이 진화작업을 벌이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번에는 소방관의 인력 문제를 다뤘습니다. 이번에는 장비와 여건 문제를 다뤄볼까요. 사실 안전은 예산과 제도, 그리고 국민적 인식이 함께 가야 합니다. 그래야 국가의 ‘안전문화’가 정착되는 것이지요. 예산이 뒷받침하는 기본적 요소는 인력과 장비, 그리고 여건입니다. 처음 인력문제에 대해 얘기했고, 이번에 장비와 여건 얘기를 하겠습니다. 마지막으로 안전제도와 문화를 얘기를 하겠습니다.
2011년 전남 광주 광산소방서에서 낡은 고가사다리차가 넘어지면서 2명의 소방관이 죽고 다쳤습니다. 소방방재청에 따르면 전국 소방차 7625대 중 1490대가 내구연한이 지났습니다. 노후화율이 19.5%입니다. 개인안전장비도 노후율이 15.4%나 됩니다. 낡고 질이 떨어지는 장갑을 끼고 불을 끄다가 화상을 입는 소방관이 많습니다. 그래서 많은 소방관들이 값비싼 외제방화장갑을 개인적으로 구입해 끼고 있습니다.
전체 소방예산 2조6천566억원중, 인건비와 기본경비 1조8천4백76억원을 제외하고, 여기서 일부 사업비 등을 빼면 장비·보강에 1825억원밖에 투입하지 못합니다. 장비가 낡았는데 구입하지 못하는 이유는 앞서 말했던 것처럼, 예산을 지방자치단체가 부담하기 때문입니다.
물론 주민의 안전을 위해 이런데 투자하지 않고 호화청사를 짓고, 축제나 벌이는 자치단체장들이 ‘나쁜 사람들’이죠. 하지만 지역에서 ‘소통령’으로 통하며 무서움이 없는 시·도지사가 행정안전부 장관, 소방방재청장 말을 듣겠습니까. 이들은 정치적으로 표가 되는 사업을 우선하지, 이렇게 표가 안나는 사업은 후순위입니다.
그나마 과거에는 특별교부세(중앙정부가 특별히 목적을 정해 지방자치단체에 지원하는 자금)를 조금 지원했으나, 지금은 이마저 지원이 안됩니다. 국고보조금 조금 지원합니만 이도 중앙119구조대 장비 보완하거나, 도입한 헬기 할부금 내면 ‘땡’입니다.
불산공장, 원자력발전소는 물론, 초고층 빌딩이 올라가고, 수천명이 생활하는 복합건물, 지하 수십·수백미터에도 각종 시설물이 들어섭니다. 지금 공사중으로 기초가 부실하다는 언론보도가 나온 제2롯데 월드는 무려 107층입니다. 그 안에 몇명이 들어가 자고, 마시고, 즐기겠습니까. 그런데 이 건물에 대한 소방·붕괴 등에 대한 안전대응은 제대로 연구되고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위험을 잔뜩 품고 있는 ‘적’은 괴물같이 커지고 정교해 지는데 반해, 이를 제압할 인력과 장비는 점점 부족하고 낡아가는 형국입니다.
이런 실정이니 ‘적’을 진압할 연구는 생각도 못하지요. 대형·신종 화재와 진압에 대한 연구인력이 우리는 거의 없습니다. 중국도 소방과학연구소에 180명이 넘는 연구인력이 있는데, 우리는 달랑 소방관 4명 있습니다. 국가 연구·개발(R&D)예산이 14조9000억원이나 됩니다만, 이중 재난·안전에 쓰이는 돈은 182억원, 불과 0.12%에 불과합니다.
이러면서 무슨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한다고 얘기할 수 있겠습니까. 매년 교통·화재·폭발 등 인적재난으로 8724명이 죽고, 4886억원의 재산손실이 납니다. 여기에 태풍이나 호우 등 자연재난으로 매년 68명이 죽고 1조6580억원의 재산피해가 발생합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살고 있는 대한민국은 매년 8792명이 죽고 2조원이 넘는 재산피해가 나는 안전 후진국입니다.
우리나라는 재난사고 사망자비율이 12.7%(2010년)라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최고라는 불명예를 안고 있습니다. 이것은 돈(예산)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돈이 없어서가 아니라 정책결정권자들의 의식의 문제입니다. 박근혜 당선자님, 이런 안전 후진국의 실상을 알아야 합니다.
■뉴스 브리핑
MB…YS 이후 가장 인기없는 임기말 대통령
임기가 1주일밖에 남지 않은 이명박 대통령의 인기가 김영삼 전 대통령 이후 최저인 것으로 드러났다. 한국갤럽은 18일 이명박 대통령의 직무수행에 대한 여론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임기말인 5년차 4·4분기 조사에서 이 대통령에 대해 긍정적 평가는 23%에 불과했다. 이는 같은 시기 조사였던 김영삼 대통령 6%, 김대중 대통령 24%, 노무현 대통령 27%로 이 대통령에 대한 긍정적 평가는 YS이후 최저였다.
연령별로는 30~40대가 긍정 14%, 부정 70%으로 가장 비판적이고, 60세 이상 연령층은 긍정 40%, 부정 38%로 평가했다. 가장 잘못한 사업은 ‘4대강 사업’으로 34%가 지적했으며, 다음은 ‘경제·경기침체’ 11% 순으로 대답했다.
비서실장 허태열…성·시·경 정부?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은 18일 청와대 비서실장에 3선 의원 출신의 허태열 전 새누리당 의원을 내정했다. 또 국정기획수석에 인수위원회 국정기획조정분과 간사인 유민봉 성균관대 교수, 민정수석에는 곽상도 전 대구지검 서부지청장, 홍보수석에는 이남기 전 SBS 미디어홀딩스 사장이 각각 내정됐다.
허태열(오른쪽) 청와대 비서실장 내정자, 곽상도(왼쪽) 청와대 민정수석 비서관 내정자 등이 18일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 집무실로 향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로써 이미 지명된 김장수 국가안보실장, 박흥렬 경호실장과 함께 장관급 청와대 3실장 체제가 완성됐다. 하지만 9개 수석비서관 가운데 정무수석을 비롯한 6개 수석비서관이 아직 결정되지 않았다. 허 비서실장 내정자는 이날 “귀는 있는데 입은 없는 게 비서 아니냐”고 소감을 말했다.
한편 박근혜 정부 인선을 놓고 ‘성·시·경 정부’라는 조어가 회자되고 있다. 과거 이명박 정부가 ‘고·소·영 내각’이라 불렀던 것에 빗대어 이번 정부는 성균관대·고시·경험자가 약진하고 있기 때문이다.
빈곤 탈출 점점 어려워진다
보건사회연구원은 18일 2005~2006년 35.4%였던 빈곤탈출률은 2007~2008년에는 31.1%, 2008~2009년 31.3%로 낮아졌다고 발표했다. 이는 보건사회연구원이 2005년부터 2009년까지 5637가구의 소득 추이를 추적·분석한 결과이다. ‘빈곤’ 기준은 가구 소득이 전체 가구 소득 순위상 중간값의 50% 미만으로 설정됐다.
보건사회연구원은 “빈곤가구가 가난에서 탈출하는 비율이 점차 낮아지는 것은 빈곤의 고착화를 시사한다”며 “단순한 소득 보조가 아니라 양질의 일자리 창출을 통해 빈곤에서 탈출하는 정책에 초점을 맞춰야할 것”이라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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