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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스런 정치, 통큰 몽양에게 배워라 ■원희복 기자의 타임캡슐(26)한때 대형 마트에서 ‘통큰’ 시리즈가 유행했다. 거의 세숫대야 만한 그릇에 치킨을 가득 담아 7000원에 파는 ‘통큰 치킨’이나, 거의 자전거 타이어 크기만한 피자를 ‘통큰 피자’로 1만2000원에 판 것이다. 골목상권을 죽인다는 이유로 요즘은 뜸하지만 서민들에게 큰 인기를 끌었다. 통큰의 반대말은 ‘좀스럽다’ 정도 될 것이다. 도량이 좁고 옹졸하다는 의미다. 요즘 정치판을 보면 바로 그 좀스러움의 극치라고 할 수 있다. 국가정보원 직원이 오피스텔에 숨어 인터넷에 ‘댓글질’ 하다 발각됐다. 선관위와 경찰이 들이 닥치자 스스로 문을 걸어 잠그고는 ‘감금됐다’고 억지를 부렸다. 경찰내부에서도 불법 수사축소 폭로가 이어졌다. 그런데도 여당은 ‘국정원 직원 인권유린’이라고 떼를 썼.. 더보기
성상납 검찰 봐주기…‘불구속·공소시효 지나’ ▶성상납 검찰 봐주기…‘불구속·공소시효 지나’ 건설업자 윤모씨 성접대 불법로비 의혹을 수사해 온 경찰청 수사팀은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과 모 대학병원 병원장·교수 등이 별장 성접대를 받은 사실을 확인, 기소의견으로 검찰에 송치했다고 18일 발표했다. 이들 사회 지도층 인사들에게 적용된 범죄 항목은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상 특수강간과 카메라 등을 이용한 촬영, 마약류관리법 위반, 건설산업기본법 위반, 경매방해, 입찰방해, 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법상 배임, 배임증재, 사기, 상습강요 등 10개 혐의다. 고위 공무원과 교수, 병원장들에게 파렴치한 범죄란 범죄는 거의 적용된 것이다. 수사팀 관계자는 “피해 여성들의 진술이 일관되고, 윤씨가 고용한 사람도 성접대를 인정한 점, 별장 등 의심 장소 출입 .. 더보기
조용수 평전 책 표지 더보기
이재오 작심…“국정원장·감사원장 사퇴, 청와대 말 아껴라” ▶이재오 작심…“국정원장·감사원장 사퇴, 청와대 말 아껴라” 새누리당 이재오 의원은 17일 최고중진연석회의에서 작심하고 남재준 국정원장과, 양건 감사원장의 사퇴를 요구했다. 특히 이 의원은 청와대의 최근 행태에 대해 포문을 열었다. 이 의원은 “지금 정국이 험악해진 원인은 국정원에 있다”면서 “정치적 혼란의 원인을 제거하려면 국정원장의 자진사퇴가 불가피하다”고 말했다. 이 의원은 국정원이 남북정상회담 대화록을 공개한 것이 바로 정치혼란의 원인이라고 지적했다. 아울러 4대강 공사 예찬론자였던 이 의원은 감사원의 4대강 감사 결과를 ‘정치감사’라고 정면으로 반박했다. 이 의원은 “감사원은 정치적 감사·주문 감사를 하면 안된다”면서 “감사원장의 자진사퇴도 정국의 안정을 위해서 불가피하다”고 강조했다. 이 의원.. 더보기
제 2편 제주도 여행 더보기
제 1편 서문~충남 서산 더보기
인명록 인 명 록 ∙ 강등인(姜登仁) 황주 공립보통학교 졸업. 46년 북조선 특산기업 황주과실 검사소 소장. 50년 북조선 농업기술협회 창설위원. 1·4 후퇴시 월남. 60년 구국청년단 가입. 60년 민자통 중앙협의회 지도위원. 재정부 차장. 총무위원회 서무. 5·16후 징역 12년 선고. ∙ 강석화(姜石華) 일명 강 훈. 19년 함북 부령 출생. 31년 만주 동흥 중학 졸업. 35년 만주 북만학원 졸업. 48년 한독당 조직부 지도위원. 48년 남북협상 참가. 56년 진보당 가입. 60년 사대당 인천시당 조직위원장. 61년 통일사회당 인천시당 조직 준비위원장. 5·16후 징역 3년 선고. ∙ 강진원(姜振元) 전북 고창 출생. 일본 중앙대학 1년 중퇴. 49년 대한통신사 전북지사 기자. 전북 고창 민주학생동맹 가.. 더보기
제10장 조용수 연보 및 참고문헌 1. 조용수 연보 1930.4.24 경남 함안 출생 봉래국민학교 졸업 1943 경남 진주중학교 입학 1948 - 자퇴 1949.4 대구 대륜중학 편입학, 졸업 1950 연희전문 정경학부 입학 1950 하만복의원 보좌관(경남 경찰국 경사) 1951.9.25 일본으로 건너감. 명치대 정경학부 2학년 편입학 1953.5.30 재일본 한국학생동맹(한학동) 문화위원으로 선출 54- 한국거류민단중앙총본부차장, 민주신문 상임논설위원 1959.4.18 죽산조봉암구명운동. ‘조봉암씨 구명청원서명운동위원회’ 가입 59.12. 민단 도치키현 부단장 유태하 공사 추방운동 도치키현 위원장 재일 한국인 북송반대 도치키현 위원장 1960.3. 일본 도치키현에서 파친코를 경영하는 강호씨 딸과 결혼 6.15 귀국 7.29 사회 대중당.. 더보기
제9장 부록 제 9 장 부 록 1. 일본외교의 특질과 한일회담(조용수 기고논문) -난중난사인 한일회담을 성공적으로 이끌려면(신태양 4291.9.1) 2. 민족의 자주적 세력으로서 남북협상의 단계까지 정세를 발전시키자 -통일운동자들의 올바른 목표와 자세를 위하여 (민족일보 61.5.16) 3. 상고이유서 (4294.9.23) 4. IPI 항의문 5. 재일 조선 언론·출판인 협회 성명(61.8) 6. 조국평화통일 남북문화 교류 촉진 재일문화회의 성명(61.8.28) 7. 민족일보 판결에 대하여/일본 펜클럽사무국장 항의문(61.8.28) 8. 일본 펜클럽 항의문(61.9.4) 9. 오사카 지방 일본인 유지들 항의문 요지(61.9.6) 10. 조용수 구명을 위한 서명운동 발기인 취지서(61.9.5) 11. 메이지대 한국유학.. 더보기
제8장 조용수 죽음 이후 제 8 장 조용수 죽음 이후 1. 복권된 민족일보 관련자들 5·16 쿠데타가 나고 조용수가 구속되면서 신문은 19일자를 끝으로 나오지 못했다. 공보처 장관은 5월 27일 민족일보의 정식 폐간을 통보했다. 신문사 간부는 모두 구속됐고, 기자를 비롯한 직원은 뿔뿔이 흩어졌다. “민족일보 간부의 구속이후 직원은 뿔뿔이 흩어졌다. 아니 도피해야 했다는 표현이 더 정확할 것이다” 조용수의 사형 집행과 함께 민족일보는 재기할 수 없는 상황이 됐다. 조용수 가족은 당시 모두 감옥에 있는 주식회사 민족일보사 이사들의 도장을 일일이 받아 62년 2월 12일 주식회사 해산신청서를 냈다. 이것으로 민족일보는 법적으로도 완전히 사라졌다. 신문사의 모든 자산은 압수됐다. 사실 민족일보의 자산이라야 지프 두 대, 책걸상 몇 개와..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