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임캡슐'에 해당되는 글 71건

  1. 영남 3총사-사육신 후손? (2)
  2. ‘잊지 말라 0416’ (1)
  3. 재난 관리는 착각이다 (1)
  4. 총리봉변 진짜이유 (1)
  5. 정치인 정년을 정하자
  6. 변호사 구속-독재정권의 징후
  7. 맹한 최규하-독일통일의 진짜 교훈
  8. 불통 리더십 원인
  9. 장세동과 남재준
  10. 정치사건 판사의 고뇌-이회창

원희복 기자의 타임캡슐(64)

영남 3총사-사육신 후손? 


우리나라는 유교적 전통과 혈연문화로 조상 숭배와 가문에 대한 집착이 유달리 강하다. 살아서 가문의 수치란 말이나 죽어서도 조상 뵐 낮이 없다는 말은 모두 그런 맥락이다. 이는 낡았지만 조상을 욕보이지 않게 처신을 잘하라는 측면에서 좋은 교훈이다.

 





사진은 1960년 7.29총선이 끝난 후 원내에 진입한 세 의원이 지금은 철거된 중앙청(광화문앞뜰에서 찍은 사진이다오른쪽 김영삼 의원박해충 의원그리고 앉아 있는 이가 박준규 의원이다부산(거재출신 김영삼경북 안동 출신 박해충그리고 대구(달성군출신 박준규 세 의원은 사진속 포즈처럼 매우 친해 영남 3총사라는 별명을 들었다특히 김영삼 의원과 박준규 의원은 청조회를 만들어 정풍운동을 하다가 여당 민주당을 탈당야당인 신민당을 창당해 나가는 등 정치적 행보도 같이했다.



사진 속 박준규 의원은 사육신의 한 사람인 박팽년의 후손이고, 김영삼 의원 역시 사육신인 김문기와 같은 금녕 김씨 집안이다. 익히 알려진 것처럼 사육신이란 조선시대 수양대군이 어린 조카 단종으로부터 왕위를 빼앗은 것에 항의하다 죽은 네 신하를 말한다.


김영삼 의원은 이후 야당으로 일관, 초산테러를 당하고 목숨을 건 단식투쟁을 했다. 그러나 김 의원은 막판 자신이 싸웠던 유신의 공화당 세력(김종필)과 민정당 세력(노태우)과 합당을 통해 대망의 대통령이 됐다. 하지만 3당 합당은 사육신 집안에 오점으로 기록된다.


사육신중 단연 으뜸이 박팽년이다. 박팽년은 왕위 찬탈에 항의해 경회루 연못에 뛰어드는 자살을 감행했다. 그리고 세조가 박팽년의 능력이 아깝게 여겨 자신을 주군으로 인정하면 살려주겠다고 했으나 박팽년은 나는 단종의 신하이지 나으리(세조)의 신하가 아니라라고 거절했다. 결국 박팽년은 옥중에서 고문으로 죽고, 다시 능지처참되는 극형에 처해진다. 3족이 멸족되는 멸문지화까지 당했다.


그 박팽년의 후손인 박준규 의원은 조상과 180도 다른 삶을 살았다. 박 의원은 민주당- 신민당을 거쳐, 5.16 쿠데타가 나자 공화당으로 박정희 정권에서 6선을 연임했다. 198012.12의 신군부에 협력해 노태우 정권에서 국회의장이 되더니, 다시 옛 친구인 김영삼 정권에서 국회의장에 연임됐다.


그러나 박 의원은 70채의 서민주택을 보유했다가 재산공개 파문으로 ’() 당하자, 김종필에게 달려갔다. 박 의원은 운 좋게 DJP연대로 김종필이 실세가 되자, 다시 김대중 정권에서 국회의장이 돼 국회의장 3선이라는 전무후무한 기록을 세웠다. 물론 국회의원 선수도 최다선 9선이다.


아마 정치권에서 박준규 의원만큼 양지에서 양지로 옮겨 다니며 화려한 영달을 누린 정치인은 없을 것이다. 헌정이 단절되고 정치보복이 다반사였던 난세의 현대사에서 이런 정치적 행보를 걸었다는 것은 정말 기록적이다.


그 박준규 의원이 53일 세상을 떠났다. 89세까지 살았으니 부귀와 장수를 동시에 누린 것이다. 하지만 세상은 그의 사망소식에 별로 슬퍼하지 않는 분위기다. 蓋棺事定(개관사정, 사람은 죽은 뒤에야 정당한 평가를 받는다)이라 했던가. 무엇보다 그는 조상 박팽년을 무슨 낮으로 뵐까 궁금하다. 그나마 국회장 마다하고, 가족장 유언한 것은 그 때문이었을까?

 

*사진 속 팔팔하던 박해충 의원은 야당으로 일관하다 2005년 세상을 떠났고, 김영삼 의원도 현재 노환으로 힘겨운 병원생활을 하고 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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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지 말라 0416’

원희복 기자의 타임캡슐(63)

잊지 말라 0416’


429일 '만기친람' 하시며 전지전능' 하신 박근혜 대통령께서는 국무총리실 직속으로 국가안전처를 만들라고 지시했다. 박 대통령이 평소 깊숙이 천착하지 않았으면, 이렇게 신속하게 국가재난관리 시스템의 모범답안을 교시하지 않았을 것이다. 게다가 박 대통령은 청와대 수석비서관, 국무위원과 공식 회의도 없이 홀로 이렇게 모범답안을 내렸다.


정부는 서둘러 정부조직법을 바꾸고 관청 간판을 크게 걸 것이다. 그리고 강력한 컨트롤타워를 구축했다고 자랑할 것이다.


사고가 발생하면 충분한 시간을 갖고 원인과 문제점을 과학적으로 검증하고, 치밀하게 대안을 마련하는 것이 중요하다. 아직 세월호에 대한 정확한 사고 원인과, 대응과 수습과정에서 문제점을 검증하지도 않았다. 그런데 해당 부처, 전문가와 상의도 없이 대통령 한 사람의 머리에서 불쑥 모범답안이 나왔다.


재난 컨트롤타워를 총리실에 두자는 연구용역 결과는 캐비넷으로 서너개 될 것이다. 그러나 그렇게 하지 않은 이유가 있다. 건설부에 있던 재난관리 업무를 내무부로 옮긴 이유는 재난현장과의 근접성이다머리만 있지 현장도손발도 없는 총리실에 재난 컨트롤타워를 두지 않은 것도 그 때문이다. 장담하건데 총리실의 국가안전처도 실패작이 될 것이다.


바로 이런 비과학적 조급증, 냄비근성, 그리고 망각이 재난후진국의 가장 큰 원인이다, 정치는 감으로 할 수 있지만, 재난관리는 과학이다. 이번 세월호 참사에서 문제가 된 해운사와 해양수산부의 준비도 졸속, 구조에 나선 해경의 대응도 졸속,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의 수습도 졸속, 그리고 박 대통령의 대책지시도 역시 졸속이다. 이런 졸속이 계속되는 한 안전 대한민국은 요원하다.




사진은 1871년 미국 시카코 대화재 모습을 그린 것이다. 아마 이 사진은 <타임캡슐>에서 가장 오래된 그림일 것이다. 도시 전체가 불에 싸인 말그대로 유황의 불이 타오르는 지옥의 모습 그것이다. 시카코 대화재는 근대 도시방재 개념을 바꾼 사고이다. 


1871108일 저녁, 캐서린 올리어리라는 여성이 황소우리를 돌보다 황소가 뒷발질로 석유등을 차면서 발화, 불이 도시 전체로 번졌다. 이 화재로 300(실제는 훨씬 더 많다는 주장도 있다)이 숨졌고, 10만 명의 이재민이 발생했다. 이 화재는 목조 보도블럭 등 건축자재부터 소방감시체계까지 모든 문제점을 과학적으로 검증하고, 보완해 도시방재 체계를 새로 세우는 계기가 됐다. 이 교훈으로 시카코는 세계적으로 도시방재의 모범 도시가 됐다.


더 중요한 것은 120년이 훨씬 넘은 2012년 시카코 시의회가 이 화재사고를 재조사했다는 점이다. 시카코 시의회는 사고 원인으로 지목된 올리어리의 실수(정확히는 황소의 뒷발질)가 사고 원인이 아니라는 증거와 증언이 나오자, 화재 원인을 재조사하기로 결정했다. 시의회 재조사 결과 화재주범으로 몰린 올리어리는 당시 반()아일랜드 정서에 의한 희생양으로 드러났. 시카코 시의회는 126년만에 이 화재의 원인을 정정했다.


바로 이것이 재난선진국의 저력이다. 재난의 원인을 집요하다 못해 처절하게 과학적으로 규명하고 재발 방지책을 마련하는 것, 이것이 안전을 만드는 근본이다. 미국은 9.11테러 이후 십여년간 건축공학자들이 철골구조 건물의 붕괴 문제를 연구하고 또 연구했다. 그 연구결과는 건축법규에 반영된 것은 물론이다.


우리는 어떤가. 이번 세월호 참사는 1993년 1010292명이 사망한 서해 훼리호 침몰사고의 문제를 고스란히 반복했다. 구조의 난맥은 불과 3년전 천안함 침몰사건보다 더 심각했다. 2003218142명이 사망한 대구지하철 참사 때 우리 모두는 마스콘키를 빼고 간 기관사에게 책임을 돌렸다. 마스콘키 문제는 나중에 재판에서 논란이 됐지만 아무도 관심을 갖지 않았다.


논란이 된 언론의 보도문제도 이미 2003년 기자협회에서 재난보도 준칙을 만들어 놓은 것이 있다. 있지만 지키지 않거나 망각한 것이다.


결국 문제는 졸속이고 망각이다. 재난선진국은 120년된 화재 사건도 과학적으로 재규명하는데, 우리는 10년전 화재 사건, 불과 3년 전 구조상황의 난맥도 망각하고 있던 것이다. 당연히 재난후진국일 수밖에 없다.


경험상 이 세월호 참사의 슬픔과 분노는 곧 희석될 것이다. 대통령이 나서 모범답안까지 제시한 마당에 뭘 더 따지고, 고민하나. 아이를 버리고 도망간 선장이란 그럴듯한 속죄양까지 있다. 그럴 것이다. 한 달 후 투표를 왜, 누구를 찍어야 하는지 모르는 사람이 태반일 것이다

잊지 말라 0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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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난 관리는 착각이다

원희복 기자의 타임캡슐(62)

재난 관리는 착각이다

 

안전은 피를 먹고 자란다는 말이 있다. 대형사고가 터져야 안전에 대한 장비와 제도가 갖춰지기 때문이다. 건축물에 지금과 같은 도시방재 개념이 도입된 것은 1871108일 시카코 대화재로 300여명이 넘는 시민이 희생된 대가이다.


진도에서 침몰한 세월호에 갖춰진 각종 안전장비도 숱하게 많은 해상사고의 결과이다. 인류는 참담한 경험을 통해 교훈을 얻어 재발 방지책을 마련하고, 오히려 새로운 기술을 발전시킨다. 바로 전화위복의 교훈이다.

 

사진은 1995629일 서울 삼풍백화점 붕괴사고로 유족들이 항의하는 모습이다. 유족들은 부실한 설계변경을 허가하고, 부실 건물의 영업을 눈감아주고, 일관성 없는 구조작업을 한 정부에 항의하고 있다. 





사진과 지금은 근 20년이라는 시차가 있지만 유족들의 분노와 요구는 똑같다. 삼풍참사 유족이 든 '위정자여 들리느냐 우리의 통곡'이라는 손팻말은 지금 세월호 침몰 유족의 심경 그대로일 것이다. 국무총리가 물벼락 세례를 받고, 해양수산부 장관이 멱살잡이 당하는 것을 보면 유족의 분노는 그 때보다 더 심각해 보인다


그럴 만도 하다. 그만큼 사고공화국이라는 소리를 들으며 국민의 피를 봤으면 이제 최소한의 안전사회는 이뤄져야 하지 않았을까. 왜 대한민국은 전화위복의 교훈을 얻지 못하는 것인가. 도대체 컨트롤타워라는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중대본)는 왜 기능을 못하고, 법에도 없는 범정부사고대책본부가 가동되고 있는가.


중대본을 오래 지켜보고 대구지하철 참사를 비롯해 태풍 루사 등의 대형재난을 취재한 경험으로 한 지적하고 싶은 것이 있다. 그것은 바로 재난을 콘트롤, 즉 관리한다는 공무원의 발상이다. 기자는 <공무원들이 재난을 관리한다는 발상에서 빨리 벗어나지 않으면 안전 대한민국은 백년하청>이라고 생각한다.


삼풍백화점 붕괴 사고로 정부에 재난관리과가 만들어졌다. 공무원들의 업무는 기본적으로 관리이다. 언제 어떤 형태로 터질지 모르는 재난을 책상에서, 서류로 관리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유명무실한 이 조직은 점차 성장을 거듭,  국장을 넘어 1급 본부장급으로 커졌다. 본부급에서 태풍과 같은 자연재해와, 폭발과 같은 사회적 재난을 별도로 관리했는데 재난관리 일원화 요구가 빗발쳤다.


결국 2002년 태풍 루사, 20032월 대구지하철 사고가 나자 재난 컨트롤타워로 소방방재청이 설치됐다. 차관급 청장으로 규모가 또 커진 것이다. 이때도 현장 대응 위주의 소방청 설립이 바람직하다는 지적이 많았지만 역시 공무원들은 관리를 좋아했다.


소방방재청이 컨트롤타워로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중대본)을 통해 행안부와 연결된 재난관리 구조는 여전히 문제가 많았다. 청와대에 NSC가 설치됐지만 대통령 자문기구인가, 행정기구인가를 놓고 서로 갈등이 있었다. 


이명박 정부에서는 청와대 NSC를 폐지하고, 안전의 컨트롤타워를 강화한다고 소방방재청 업무를 떼어 행안부로 옮겼다. 그러자 소방방재청과 행안부가 업무영역을 놓고 다투다가 소방방재청장이 경질되기도 했다.


박근혜 정부에서 재난관리 컨트롤타워는 장관급으로 더 커졌다. 소방방재청에서 하던 실무관리 기능을 아예 통째로 안행부로 옮긴 것이다. 그러나 막상 하는 업무란 대통령의 관심사항인 여성안전, 학교안전, 음식물안전 등 안전(Safety)가 아닌 치안(Public order)에 가까웠다경찰인력만 대폭 늘려놨다. 


이런 상황에서 이번 세월호 침몰 사태가 터졌다. 그리고 안전 대한민국을 외치던 안행부와 중대본은 난맥과 무력함을 드러냈다. 결국 기존 중대본 기능을 정지시키고, ‘불법으로국무총리가 지휘하는 범정부사고대책본부를 만들었다. 재난 수습 중 컨트롤타워가 바뀐 것은 전투중 지휘관이 바뀐 것으로 이 역시 졸속일 수밖에 없다.


심지어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 21일 수석비서관 회의에서 더 강력한 재난대응 컨트롤타워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총리가 지휘하는 지금 대책본부보다 더 강력한 컨트롤타워라면 대통령이 컨트롤하는 조직을 만들겠다는 것인가?


바로 여기에 문제가 있다. 강력한 컨트롤타워, 즉 재난을 관리, 지휘한다는 것은 탁상행정이며 중앙집권적 발상이다. 바로 이런 발상이 우리가 재난후진국에서 맴돌고 있는 이유이다. 재난은 위에서 관리하는 것이 아니라, 아래에서부터 생활화, 체질화, 문화화 돼야 한다.


이번 세월호 참사에서 보듯이 생사를 가른 것은 평범하고 일상적인 점검과 훈련, 그리고 위기의 순간인 골든타임에 어떻게 대처했느냐이다. 그것은 기본적 안전점검, 구명정을 내리는 훈련, 최소한의 대피교육 등의 문제이다구조작업 등 수습도 마찬가지다높은 컨트롤타워가 아닌 철저히 현장 실무자에게 맡겨야 한다


재난에서 중요한 것은 강력한 컨트롤타워 문제가 아니라바닥(bottom)의 문화(culture)의 문제라는 것이다물론 바닥문화를 바꾸는 것이 위에서 관리하는 것보다 더 어려운 일일지 모른다

 

우리는 대형사고가 날 때마다 정부의 컨트롤타워를 키워왔다. 과에서, 본부로, 청으로, 그리고 부로, 현재는(불법이지만) 총리까지 왔다. 대통령은 더 강력한 컨트롤타워를 만들겠다고 한다. 과거 재난에서 교훈을 얻지 못한 단견이다컨트롤타워가 높아지면 안되고서포트(지원)타워가 높아야 한다. 재난을 관리하겠다는 발상을 버리지 않는 한 우리는 재난후진국에서 벗어날 수 없다. 20년전 삼풍붕괴 사고의 유족이 든 '위정자여 들리느냐 우리의 통곡'이라는 손팻말, 진정 지금 위정자들은 듣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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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리봉변 진짜이유

■원희복 기자의 타임캡슐(61)

총리봉변 진짜이유

 

헌법에 의하면 국무총리는 유사시 대통령을 대리하고, 국무위원 임명제청권 등을 가진 막강한 자리이다. 물론 최고 권력자가 국무총리를 어떻게 대우하느냐에 따라 실세 총리혹은 대독 총리’ ‘방탄 총리등으로 바뀔 수 있다.


하지만 우리 국민 대부분은 국무총리가 힘이 없음을 안다. 그래서 총리하면 그냥 큰 어른정도로 생각하고, 경호도 그리 철저하게 하지 않는다.(물론 총리도 경호관이 항상 따라 다닌다) 총리를 상대로 테러를 하는 경우가 거의 일어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데 권위주의 시대에 총리가 봉변을 당한 경우가 있다. 노태우 정권시절 정원식 총리가 그 주인공이다.

 



 

사진은 199163일 오후 한국외국어대학교에서 계란과 밀가루 세례를 받은 정원식 국무총리 서리 모습이다. 밀가루를 뒤집어 쓰고 망가진 그의 몰골은 국무총리라고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처참하다. 당시 학생들이 던진 물건중에는 계란과 밀가루 말고도 짱돌과 심지어 인분까지 있었다고 한다.


당시 정국은 고문으로 대학생을 죽이는 강경대군 치사사건이 일어나고, 최근 재심 결정이 난 강기훈씨 유서대필 논란이 벌어지는 등 학생들의 연이은 분신이 벌어지던 매우 참담하고 암울한 시기였다. 정 총리는 바로 이 시기 학원을 책임진 문교부장관이었다. 


정 총리는 훗날 자신의 이런 봉변을 전교조를 인정하지 않은 것에 대한 학생들의 분노라고 해석했는데, 그건 아니다. 당시 외대 학생들이 정 총리에게 계란과 밀가루, 인분을 던진 것은 선생님 노조를 인정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정부가 학생들의 고문과 투옥, 그리고 분신을 외면했기 때문이다. 총리가 자신이 왜 봉변을 당했는지 모른다는 것은 더 문제다. 바로 민심을 모른다는 얘기기 때문이다.


23년 만에 총리가 봉변을 당하는 일이 벌어졌다. 정홍원 국무총리는 17일 여객선 세월호 침몰 가족이 있는 진도실내체육관을 방문했다. 정 총리는 유족들이 '똑바로 해' '씨**아'라고 소리치는 가운데도 꿋꿋하게 카메라 앞에서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분위기는 유족들과 진정어린 대화라기 보다, 카메라 앞에서 언론과의 대화라는 느낌이 강했다. 급기야 흥분한 가족들이 욕을 해대며 정 총리에게 물병을 던졌다. 물세례를 받은 정 총리는 경호관들에 둘러싸여 서둘러 체육관을 빠져나갔다.


앞서 정원식 총리가 계란과 밀가루, 심지어 인분세례까지 받은 것에 비하면 정홍원 총리가 받은 생수세례는 매우 깨끗한 봉변이라 할 수 있다. 물론 아무리 그래도 유족들이 총리에게 생수병을 던진 것은 잘못이다. 이럴수록 유족들도 냉정을 찾아야 한다.


정 총리도 유족보다, 카메라 앞에서 언론을 상대로 말하는 태도를 보인 것은 분명 잘못이다. 선배 정원식 총리도 그랬지만 정홍원 총리 역시 민심을 너무 모른 것이다. 


게다가 당장 현장 대응과 수습도 중요하지만 총리 정도면 사고의 재발방지책을 고민해야 한다. 정확히 무엇이 이런 사고를 야기했고, 어떤 제도적 보완책이 필요한 것인가를 봐야 한다는 것이다. 그것을 가만히 따져보면 십중팔구 우리는 안전에 대한 법규가 대단히 소홀하다는 결론에 이를 것이다. 이런 해난사고를 미연에 대비하고, 국민의 안전을 지키는 법규와 제도는 기업의 입장에서는 규제이다.


그런데 이 정부는 기업의 입장에 서서 규제를 대폭 해제하겠다고 나섰다. 물론 불필요한 규제는 마땅히 풀어야 하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가 많다. 안전을 중시해 행정안전부를 안전행정부로 이름까지 바꾼 이 정부가 안전에 대한 규제를 푼다는 것은 큰 모순이다. 바로 그 모순의 선두에 정홍원 총리가 있다. 기자는 정홍원 총리가 당한 생수봉변의 정확한 의미는 바로 안전과 관련된 규제를 풀지 말라는 외침으로 들린다. 그것을 정 총리가 깨달을지는 모르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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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인 정년을 정하자

원희복 기자의 타임캡슐(60)

정치인 정년을 정하자

 

직장인에게는 사규에 규정된 정년이 있지만, 법적으로 가동연한이라는 것이 있다. 손해배상을 위해 직업별로 정해 놓은 일종의 법적 정년이다. 이는 업무의 특성과 육체적 노동강도 등을 감안해 정한다.


여기에 따르면 술집이나 다방 여종업원은 35세로 가장 짧다. 프로 야구선수는 40, 보통 직장인은 60세이다. 의사, 종교인, 화가, 예술가 등은 65세이다. 가동연한이 가장 높은 직업은 변호사로 70세이다. 법적으로 70세 이상이면 더 이상 생산적 활동을 못한다는 의미다.


그렇다면 정치인의 가동연한은 얼마나 될까지금 이에 대한 판례가 있는지 모르겠지만, 한 10여년전 판례가 없던 당시 기자가 재미삼아 취재해 본 적이 있다. 손해사정인이나 재판연구관의 의견을 들어보면 정치도 일종의 예술이며, 또 직업적 스트레스가 별로 없다는 점에서 65세가 적당하다고 한다. 그러나 선거 때 득표활동을 해야 하고, 또 가끔 의사당에서 몸싸움이라는 육체적 노동이 필요하다는 점에서 대략 62~63세가 적당할 것이라는 의견이 많았다.


결국 70세 이상 가동연한의 직업은 아직 없다. 그런데 요즘 가동연한이 지난 노정객들이 속속 정치 일선에 복귀하고 있다. 박근혜 정부에서 왕비서혹은 ‘2인자로 꼽히는 김기춘 청와대 비서실장은 75세이고, 정홍원 국무총리는 71세이다. 차기 새누리당 대표가 유력시 되는 서청원 전 의원이 72세이다. 그렇게 되면 70대 이상 노인이 당··(, 정부, 청와대)을 모두 장악하게 된다.


경륜이 풍부한 사람이 일선에서 계속 활동하는 것은 환영할 일이다. 문제는 이런 70대 노인들의 공통점은 자신의 전성기였던 30~40대 정치, 공직생활에 최고 가치를 부여한다는 점이다. 30~40년전 정치와 공직에서 최고 가치는 바로 효율과 독재이다. 이들은 일사분란한 효율과 규율에 익숙하고, 이것에 강한 정당성까지 부여한다.


 

사진은 이승만 대통령의 국가보안법 개정에 반대하는 시위를 하는 민주당 이철승 의원의 모습이다. 중절모자를 쓴 젊잖은 신사가 길거리에서 몸싸움을 하는 것을 보니 이 의원이 화가 단단히 난 모양이다.


사실 정치인은 정치적 발언이 그치는 순간이 바로 가동연한 즉 정년을 의미한다. 그런 면에서 현재 활동하는 최고령 정치인은 7선을 역임한 93세의 이철승 전 의원이 아닐까 한다. 그는 요즘에서 소원은 평양에서 막걸리 한잔 하는 것이라며 남북문제에 나름 정치적 관심을 나타낸다.


사진 속 이철승 의원이 화가난 이유는 이것이다. 이승만 정권은 1958년 장기집권을 위해 국가보안법을 대폭 강화하는 개정안을 만들었다. 당시 이기붕 국회의장이 앞장섰지만 언론과 야당은 극력 반대했다. 반공을 트레이드마크로 여기는 이 의원까지 이렇게 반대하는 것을 보면 문제가 많긴 많았다.


당시 경향신문은 사설에서 인권의 중대한 침해’ ‘일당 독재를 가져오는 것 외에 아무것도 아니다라고 국가보안법 개정을 반대했다. 동아일보는 헌법의 원칙을 일탈한 위헌, 부당한 입법’ ‘이것이 정치적으로 악용된다면 그 결과는 가공할 것’ ‘자유민주주의 민주공화국의 기초를 송두리째 무너뜨릴 위험등으로 경고했다.


그러나 이승만의 자유당은 경향신문을 폐간하고, 법안을 날치기 통과시켰다. 그리고 이 법은 우려한 대로 진보당 조봉암 당수를 제거하는 등 정적 제거에 사용됐다. 결국 이승만 정권은 국가보안법을 강화한지 2년만에 종말을 고하고, 이 법안을 주도적으로 개정한 이기붕 국회의장은 일가족이 자살하는 비참한 말로를 걸었다.


이후에도 이 국가보안법은 박정희, 전두환, 노태우 정권을 거치며 국가안보보다, 정권안보 도구로 활용되면서 많은 희생자를 양산했다. 그런데도 현 정부의 국가보안법에 대한 시각은 사진 속 50여년전 야당이나, 언론의 주장보다 훨씬 보수적이고, 갈등 지향적이다. 철저한 반공투사 이철승 의원도 그리 반대한 국가보안법인데 말이다. 심지어 같은 나라의 한쪽에서는 이 국가보안법을 악용해 간첩을 조작한 사람에 대해 수억원씩 배상하고, 다른 한쪽에서는 여전히 이 법으로 간첩을 조작하는 일이 벌어진다.


이런 모순의 정치, 사회가 된 이유는 70대 노인이 당과 정부, 청와대를 장악하고 있기 때문 아닐까. 그래서 정치인의 가동연한(정년)을 정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63세 되면 공무담임권과 피선거권을 박탈하면 어떨까. 물론 헌재로부터 위헌 판정을 받겠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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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희복 기자의 타임캡슐(59)

변호사 구속-독재정권의 징후

 

권위주의 정권, 쉽게 말해 독재정권을 유심히 관찰해 보면 몇 가지 공통점이 있다. 이승만 체제, 박정희 체제, 전두환 체제 등 독재정권의 징후와 그 전개 양상은 어느 정권이나 비슷하다.


독재정권이 노골화 되는 첫 번째 시작은 학생과 교수, 노동자에 대한 구속과 탄압이다. 민주화를 요구하는 학원을 억압하고, 노동조건 개선을 요구하는 노동자를 탄압한다. 학생과 교수, 노동자는 졸지에 국가보안법 위반, 간첩 등으로 조작된다.


두 번째는 징후는 실태를 고발하는 언론에 대한 탄압이다. 언로와 공론의 장을 막음으로써 국민의 입과 눈, 귀를 막아버린다. 이에 저항하는 언론사와 기자는 겁박하고 해직시킨다.


세 번째 단계는 부당한 이런 사실을 추궁하는 야당 의원을 용공조작이든, 뒷조사를 통해 파렴치범으로 만든다. 아예 정적이라고 생각되면 제거한다. 이승만의 진보당 당수 조봉암이 그랬고, 박정희 시대 장준하는 그런 의혹의 인물이다. 전두환의 김대중 납치사건도 비슷한 경우다.


네 번째는 이에 항의하는 성직자를 구속하는 단계이다. 성직자가 구속에 이르렀다는 것은 거의 독재가 노골화 됐다는 증거이다. 위정자들이 착각하고 있는 것은 성직자들을 탄압해봐야 별 효과가 없다는 것을 모른다는 것이다. 그들은 고난을 즐기는데 익숙한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오히려 이는 정권 유지의 조바심을 만천하에 드러내는 것이다.


마지막 단계는 바로 변호사에 대한 사법처리가 아닐까 한다. 왜냐하면 법에 대해서 빠삭한변호사들을 잡아넣기는 매우 어렵기 때문이다. 본인이 큰 실수를 하면 모를까 법망을 피해 다닐 수 있는 변호사를 구속하는 것은 거의 막가파식 결심 아니면 어렵다. 이는 정권이 거의 막장에 이르렀다는 것을 스스로 고백하는 것이다. 특히 낙후한 우리 교정 현실을 잘 아는 변호사가 감옥 들어가기를 각오했다는 것은 정권의 정당성도 막바지에 이르렀다는 것이다.

 




사진은 1975217일 형집행정지로 석방되는 강신옥 변호사의 모습이다. 강 변호사는 1974711일 민청학련 사건 변론에서 지금 검찰관은 나라일을 걱정하는 애국학생을 내란죄, 국가보반법 위반, 반공법 위반 등을 걸어 빨갱이로 몰고 사형이니 무기징역이니 구형하고 있다.~본 변호인은 직업상 이 자리에서 변론하고 있으나 그렇지 않다면 차라리 피고인들과 뜻을 같이하여 피고인석에 앉고 싶다~”고 토로했다.


이 변론으로 강 변호사는 재판정에서 끌려나와 구속되는 세계 사법사상 초유의 사건 주인공이 됐다. 긴급조치 위반, 법정모독혐의로 징역 10년을 선고받았으나 7개월여 만에 형집행정지가 결정됐다. 옥중 생활을 마치고 출소하는 그의 얼굴에는 기쁨이 넘치고, 주변에 동료 인권변호사들이 축하하고 있다.


성직자나 변호사를 잡아넣는 것은 권력 내 매파의 입김이 최고조에 이르렀다는 반증이고, 정권이 더 이상 쓸 카드가 없다는 신호이다. 강신옥 변호사 구속이후 유신정권은 이병린 변호사 구속(19751) 한승헌 변호사 구속(19753) 등 막장으로 치닫다가 결국 비극적 종말을 고했다.


전두환 정권도 이돈명 변호사 구속(1986), 노무현 변호사 구속(19879)을 거치다 결국 전두환 자신이 백담사 유배되는 신세가 됐다. 전두환과 노태우는 내란죄로 구속되는 역사적 평결을 받았다.


최근 국정원 서울시 공무원 간첩조작사건으로 박근혜 정권이 매우 어려운 처지에 빠졌다. 국정원은 대선개입 의혹으로 이미 국민적 신뢰를 잃은 상태에서 이번 간첩조작으로 회복하기 어려운 치명상을 입었다.


이 국정원 간첩조작 사건의 진실을 밝힌 사람이 장경욱 변호사이다. 그는 한발 더 나가 북한 보위부 직파간첩, 탈북 여간첩도 모두 조작됐다고 폭로하고 나섰다. 정말 국정원의 입장에서 장 변호사는 눈엣가시 같은 존재이다.


그런 장 변호사에 대한 사법처리가 검토되고 있다는 소식이다. 장 변호사가 지난해 1112일 독일에서 열린 한 학술대회에 참석했는데, 그 자리에 북한 통일선전부 산하 조국통일연구원이 참석한 것이다. 북측인사를 접촉했으면 사전 혹은 사후라도 신고해야 하는데 장 변호사는 이를 지키지 않았다는 것이다. 남북교류법 위반은 물론, 국가보안법상 회합·통신혐의 적용이 가능한지도 검토하고 있다고 한다.


가만히 있다가 5개 월 전 일을 다시 끄집어 낸 것도 그렇지만, 법에 빠삭한 변호사를 구속시키는 일은 앞서 예처럼 쉽지도 않을 뿐 아니라, 후유증도 크다. 게다가 지난번 정권퇴진을 주장한 박창신 신부를 사법처리 하려가 움찔한 정부가 그보다 단계가 높은 변호사를 사법처리하는 강수를 둘지는 미지수이다. 앞서 예처럼 권위주의 정권의 막장에서나 있을 법한 변호사 사법처리를 설마 강행할까도 의문이다.


그나저나, 대한민국의 민주주의가 이런 저급한 수준으로 계속 가야 하는가. 참으로 참담한 일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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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희복 기자의 타임캡슐(58)

맹한 최규하-독일통일의 진짜 교훈

 

대통령은 취임식에서 나는 헌법을 준수하고 국가를 보위하며 조국의 평화적 통일과~ 대통령으로서의 직책을 성실히 수행할 것이라고 국민 앞에 선서한다.(헌법 제69) 평화통일이 대통령의 주요 직무임을 만천하에 알리는 것이다.


요즘 박근혜 대통령이 통일대박발언이후 엄청난 통일논의가 쏟아지고 있다. 불과 1년 전만 해도 개성공단이 폐쇄되고, ‘준 전시상태라는 말이 여당 최고위원회의에서 공공연하게 나왔다. 국방부장관이라는 사람이 1~3월 북한 침략이라고 무책임하게 떠들던 때가 바로 엊그제였다.


그런데 갑자기 통일대박이라는 말이 나왔다. 남북관계가 크게 달라진 것도 없는데 대북정책은 180도 바뀌었다. 엄청난 통일비용 때문에 통일은 먼 얘기라던 보수언론과 통일부도 안면을 싹 바꿨다.


서해 북방한계선(NLL)의 평화이용은 영해포기라며 길길이 날뛰던 사람들이 바다보다 더 중요한 영토포기인 육지의 DMZ평화공원에는 입을 다물고 있다. 게다가 서해 NLL 평화이용은 남북만 합의하면 이뤄지는 간단한 문제인 반면, 영토문제인 DMZ평화공원은 휴전협정, 유엔군사령부 문제, 유엔결의 등 국제법상 숱한 난제가 놓여 있는 복잡한 사안인데도 말이다. 이는 마치 아기에게 걸음마를 건너뛰고 마라톤에 출전시키자고 주장하는 격이다


게다가 헌법에는 분명히 '평화통일'이라고 돼 있는데, 국정원장이라는 사람이 '죽자'라고 말하는 것을 봐서 정부의 태도는 '흡수통일' 혹은 '무력통일'에 가깝다. 통일의 대상인 북한은 요즘 미사일을 쏘고 난리다. 당연히 국민은 혼란스럽고, 불안하다.


박 대통령은 독일을 방문해 분단국에서 통일을 이룬 현장을 둘러보고 있다. 좋다. 통일대박, 좋은 일이다. 통일로 유럽의 경제, 정치적 강대국으로 부상한 독일에서 교훈을 얻어서 나쁠 것이 뭐가 있겠나. 통일독일 교훈 이야기가 나왔는데, 외부 교훈보다 과거 동서독의 시대흐름을 간과한 한국 정치 위정자들의 무능을 먼저 반면교사로 삼아야 하지 않을까.




 

사진은 1970년 최규하 외무부장관이 국회 외무통일위에 출석한 모습이다. 야당 중진(대표)인 류진산 의원이 무엇인가 진지하게 질의하는데, 최 외무장관은 약간 삐딱한 자세로 듣고 있다. 그 옆에 앉은 박준규 의원(후에 국회의장 역임)은 무엇이 그리 좋은지 히죽거리며 웃고 있다.


서독의 빌리브란트 수상은 1960년대 중반부터 동서독 동시 유엔가입을 추진했다. 분단국가가 재통일을 위해 평화를 제도화하는 방안으로 동시에 유엔 회원국이 되는 것이 필요하다고 판단한 것이다유엔동시 가입은 서로의 존재를 인정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한다.


당시 우리 야당 신민당의 한 의원이 동서독의 사례를 들어 남북한 유엔 동시가입에 대한 질문을 했다. 그 때 최 외무부장관은 북한의 실체를 인정하는 것이기 때문에 불가하다는 입장만 되풀이했다. 사실 유신 직전인 당시 박정희 정권은 통일문제를 정권이 독점하고, 남북관계를 정권 안보와 결부시켰다. 그런 상황에서 북한을 인정할 순 없었을 것이다.


결국 동서독은 1973년 9월 유엔 동시가입을 성사시켜 재통일을 위한 국제적, 제도적 기틀을 마련했다. 남북 베트남은 1975년 동시 유엔가입을 추진하다 실패, 결국 무력으로 통일을 이루는 비극적 과정을 거쳤다.


결론적으로 당시 맹한(흐리멍텅한) 최 외무부장관은 국제질서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특히 동서독과 베트남 등 분단국가의 국제적 움직임에 전혀 감을 잡지 못한 것이다. '맹한' 최 외무부장관의 이러한 단견은 나중에 국가적 비극을 초래했다. 최 외무장관은 얼떨결에대통령이 되어 '맹한' 태도로 일관, 신군부의 등장과 5·18 광주비극을 막지 못했다.


통일 논의를 독점하고, 정권안보와 결부시킨 박정희 정권의 행보는 1972년 이른바 7·4 공동성명 이후에도 계속됐다. 7·4 공동성명이 자주, 평화, 민족대단결이라는 원칙을 남북 당국자가 최초로 합의한 측면에서 높은 평가를 받지만, 밀사를 통해 정권안보적 차원에서 추진된 부정적 측면도 컸다. 정권이 통일논의를 독점하고, 민간 심지어 학계의 통일논의까지 국가보안법, 반공법 위반으로 몰았다.


실제 동서독에서 유엔동시가입을 이뤄낸 1973, 우리나라는 남북한 유엔동시가입을 주장한 교수를 반공법 위반으로 처벌하기도 했다. 우리나라는 뒤늦게 남북한 유엔동시가입의 효용성을 인정, 이를 추진해 1991년 9월에야 겨우 이뤄냈다.


박근혜 대통령이 독일을 방문해 무슨 교훈을 얻을지 알 수는 없다. 독일 브란텐부르크 문 앞에서 사진이나 찍고 와선 안된다. 동서독이 1973년 유엔동시가입을 이루고, 17년 만에 재통일을 이룬 것에서 진짜 교훈을 얻어야 한다. 


그 교훈의 기저에는 국제 기류를 모르던 맹한외무부장관과 같은 주변 참모를 정리하고, 통일문제를 정권이 독점, 야당과 민간의 통일논의를 '종북'으로 모는 우를 다시 범해선 안된다는 것이다. 무엇보다 통일문제를 국내 정권안보로 이용했던 부친의 오류를 극복해야 한다. 34년 전 이 한 장의 사진은 그 교훈을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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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통 리더십 원인

원희복 기자의 타임캡슐(57)

불통 리더십의 원인

 

요즘 박근혜 대통령의 어투가 화젯거리다. 지난 2월 국무조정실 업무보고에서 한 번 물면 살점이 완전히 뜯어져 나갈 때까지 안 놓는다는 이른바 진돗개 발언에서 310일 청와대 수석비서관회의에서 쳐부술 원수, 암덩어리로 생각하고 규제를 확확 들어내야라는 원쑤 발언이 그것이다.


통일은 대박이라는 발언 역시 민족적 염원인 통일을 무슨 로또에 비유한 것으로 사려 깊은 어휘선택은 아니라는 지적이 많다.

 

이런 화법은 규제개혁 등 나름의 조치에 공무원들이 일사분란하게 움직이지 않기 때문에 공무원 군기잡기용이라는 해석이 많다. 하지만 공무원에게 일방적 지시가 통하는 시대는 지났다


상명하복이 분명한 군대에서 명령에 대해 무조건 복종하는 것으로 알고 있지만 천만의 말씀이다. 군기를 정의하면 명령에 대한 자발적 복종이다. 여기서 자발적이라는 것이 중요하다. 공무원의 자발적 규제개혁의 움직임을 이끌어내지 못하는 리더십은 민주적 리더십이 아니다.


효율을 따지자면 총 한 자루면 된다. 총 한 자루면 시간도 빠르고, 비용도 적게 든다. 하지만 우리는 이것을 군사독재라고 부른다. 법대로다수결 원칙을 앞세우는 정치 역시 마찬가지다. 공무원에게 징계 규정집을 들이대며 강요하는 리더 역시 구시대적이다.


그래서 자발적 동기를 이끌어내는 설득과 소통이 중요한 것이다. 정치를 설득의 예술이라고 하는 것도 이런 이유이다.


 

 


사진은 바로 설득의 명수 김대중 전 대통령이 7대 국회인 1969년 국회본회의장에서 무엇인가 열심히 설득하는 모습이다. 왼쪽의 공화당 오치성 의원과, 오른쪽 신민당 정해영 의원 사이에서 큰 체스처까지 해가며 말하는 DJ의 모습이 매우 열정적이다. 진지한 표정과 나비넥타이가 영 어울리지는 않지만....


사실 이 때는 박정희 정권이 부정선거로 3선 개헌을 강행한 직후로 여야는 거의 적대적관계였다. 아마 국정원의 대선 개입 논란으로 야당의 장외투쟁과 시민단체의 촛불시위가 벌어지는 요즘 상황보다 훨씬 심각했을 것이다. DJ는 여야 원내총무를 불러놓고 서로 소통의 필요성을 역설하는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요즘 각종 여론조사나 박 대통령에 대한 지적을 보면 공통적으로 불통의 이지미가 지적된다. 달변이나, 논리적이지 않은 박 대통령에게 DJ 만큼 소통의 기술을 요구하는 것은 무리일 것이다. 하지만 꼭 달변이 설득에 유리한 것은 아니다. 말이 어눌하더라도 공감을 얻는 경우도 많다.


박 대통령이 불통의 이미지를 갖게 된 이유가 몇 가지 있지만 가장 큰 요인은 남에게 엄격, 자신에게 애매한 화법 때문이 아닌가 한다. 박 대통령은 남에게는 이렇게 직설적이고 원색적인 화법을 구사하지만 정작 자신의 문제는 매우 애매한 화법을 구사하는 특징이 있다.


이른바 유체이탈 화법’, 혹은 ‘3인칭 관찰자 시점 화법으로 자신의 책임을 남 얘기하듯 하는 스타일이다. 대표적 예가 기초연금 공약이 무산됐을 때 국민적 합의가 있으면 지원을 확대하겠다는 발언이 그것이다. 국민적 합의를 이끌어내는 것이 대통령의 일인데, 그것을 하겠다는 것인지 아닌지 애매한 화법이다.


박 대통령이 소통에 취약한 또 다른 이유는 대선전 TV 토론에서 드러났지만 피의자피해자로 판단하고 강변하는 사태파악 부족때문이다.  그러니 논리가 서지 않고대가 이해하기 어렵다. 프롬프트나 사전 질문지가 없으면 답변이 어려운 것, 그래서 자연스런 기자회견이 어렵다. 기자와 자연스런 회견이 어려우니 국민과 소통이 될리 없다.


소통의 기본은 상대의 다름을 인정하고, 상대의 말을 경청하면서 사실관계를 논리적으로 풀어가는 것이다. 그러나 박 대통령은 상대를 인정하지 않고 내가 하는 것이 옳다는 만기친람적 아집, 자신은 무결점의 최고 애국자라는 자기 폐쇄적 착각, 전체 맥락을 이해하지 못하는 이해력 부족 등이 문제이다. 바로 이것이 박 대통령의 불통 이미지 원인 아닌가 생각된다.


진돗개, 원수, 암덩어리 등 단편적이고 직설적인 어법보다 부드러우면서 분명하며, 믿음을 주는 화법을 구사하는 것, 그것이 바로 소통의 시작 아닐까.

 

장세동과 남재준

원희복 기자의 타임캡슐(56)

장세동과 남재준

 

우리 국가정보기관 책임자는 대부분 한 인물하는 사람들이다. 그중 '걸출한 인물을 꼽으라면 19616월 중앙정보부를 처음 창설한 김종필(JP)이다. JP5.16 쿠데타를 성사 시키자마자 한 달도 안돼 정보기관을 만들고, 민족일보 사건, 황태성 사건 등 굵직한 사건을 만들었다.


다음은 중정부장을 하다 미국으로 망명해 박 정권의 비리를 폭로했다가 옛 부하들에 의해 프랑스에서 살해된 김형욱 부장(1963~1969), 무엇보다 박정희 대통령 심장에 총을 쏜 김재규 부장(1976~1979), 그리고 내란을 성공시킨 전두환 부장(1980.4~1980.7) 등이 있다. 총으로 죽이고, 죽은 후진국 정보기관장의 모습이지만 그래도 나름 한 시대를 주름잡던 인물들이다.


이름이 국가안전기획부로 바뀐 전두환 시대에는 장세동 부장(1985.2 ~ 1987.5)이 단연 두드러진다. 장세동은 청와대 외곽을 지키는 수도경비사령부 제30경비단장으로 전두환의 12.12 군사반란에 가담했다. 이후 청와대 경호실장을 거쳐, 국가안전기획부장으로 임명됐다. 그는 전두환의 절대적 신임을 받았다.


그는 1983년 전두환의 미얀마(버마) 방문도중 발생한 폭탄테러를 막지 못한 책임을 지고 사표를 제출했으나, 반려됐다. 결국 그는 1987년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 은폐 사실에 대한 책임을 지고 안기부장에서 깨끗이 물러났다 게다가 그는 1993년 이른바 신한민주당 창당방해 사건인 용팔이 사건에 안기부가 개입한 것이 드러나자 내 선에서 처리된 사건이라며 스스로 경찰에 출두했다.

 


사진은 바로 그 용팔이 사건으로 재판을 받는 장세동 부장의 모습이다. 손목에 수갑을 차고 포승줄로 몸을 둘렀지만 매우 당당한 표정이다. 아래 부하에게, 심지어 외부 휴민트에게 책임을 미루는 요즘 국정원과 차원이 다르다. 


장 부장은 자신의 잘못에 분명한 책임과 명확한 거취를 밝혀 의외로’ ‘남자다운 군인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앞서 아웅산 폭탄테러, 박종철 고문치사, 용팔이 사건 등 통치권자가 져야 할 책임을 떠안았기 때문일 것이다.


게다가 장세동 부장은 감옥에서 다른 사람과 달리 사식을 먹지 않고, 교도관에게 절대 반말을 하지 않는 등 찌질하지 않은군인이라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 장 부장은 잘 생긴 외모에 책임을 부하에게 미루지 않는 당당함과 소신으로 당시 강남 룸사롱 마담에게 최고의 인기남으로 회자되기도 했다.


장세동 부장은 이런 인기를 바탕으로 2004년 제17대 국회의원 선거에 출마(서초구을)하거나 심지어 대통령 선거에 출마하는 만용을 보였지만 어찌됐든 그는 당당했다.


요즘 국정원이 서울시 공무원 간첩사건의 증거를 조작한 사실이 연이어 드러나고 있다. 그런데 내용을 보면 70년대 3류 첩보영화에도 미치지 못하는 스토리다. 심지어 증거조작에 가담한 요원이 국조원’(국가조작원)이라고 조롱했을 정도다. 그런데 국정원은 휴일 밤 해명서 한 장 내놓고 꼬리 자르기, 서로 책임 책임 미루기에 급급하다.


그러자 310일 민주당 최고위원회의에서 신경민 최고의원은 찌질해도 너무나 찌질한 국정원이라고 일갈했다. 신 최고위원은 국정원에서 007의 모습을 기대한 것은 아니지만 찌질해도 너무나 찌질한 국정원이라고 힐난했다.


신 최고위원은 남재준 국정원장을 겨냥, “남재준 원장은 왜 말이 없나. 작년 8월 국정원 명예 운운하면서 국제정치 역사에서 처음으로 정상 대화록을 공개하지 않았나. 지금은 블랙(하수인)에게 모든 책임을 뒤집어 씌우려하고 있다고 비난했다.


사실 서울시 공무원 간첩조작사건은 1심에서 증거로 제출한 사진이 조작된 것임이 드러나 무죄가 선고된 사건이다. 그런데 국정원은 다시 중국영사 서류를 위조해 끝까지 간첩을 조작하려 했다. 이것은 탁 치니, 억 하고 죽었다는 박종철군 고문치사 사건보다 훨씬 계획적이고, 악질적이다


국가기관이 불법 증거를 법정에 제출한 것은 대한민국 사법체계를 뒤흔드는 국기문란 사건이다. 게다가 국정원은 이 과정에서 여동생을 6개월간 감금해 오빠를 간첩이라고 증언시키는 반인륜적 행위도 서슴치 않았다.


이미 여당 중진 이재오 의원은 증거 위조로 간첩을 만드는 시대는 이미 한참 지났다면서 남재준 원장의 사퇴를 요구했다. 게다가 10일 저녁에는 국정원이 검찰의 압수수색이란 수모를 당했다. 수사를 하는 국정원이 압수수색 대상이 된 것은 매우 수치스런 일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남 원장을 과거 전두환의 장세동 부장만큼 신뢰하고 있는지 모른다. 남 원장을 경질하지 않는 임명권자도 문제지만, 임명권자의 눈치를 보는 국정원장은 더 문제이다.


군인은 진퇴를 분명히 하는 것을 평생 배운다. 진격할 것이나, 후퇴할 것이냐를 놓고 찌질거리다가는 부하를 모두 죽일 수 있기 때문이다. 찌질하다는 소리를 듣고, 여당에서도 사퇴요구까지 나오는 남 원장은 진작 장세동 선배에게 배워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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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희복 기자의 타임캡슐(55)

정치사건 판사의 고뇌-이회창

 


19962월 어느날, 서울 광화문 교보문고 뒤편에 있는 이마빌딩(이마빌딩은 요즘 인기 연속극 정도전의 집터였던 곳이다) 이회창 변호사는 다소 상기된 표정으로 기자와 단 둘이 마주 앉았다이 변호사는 얼굴이 흰 데다 정치 초년병 시절 수줍음을 많이 타 얼굴에 홍조를 띄는 경우가 많았다.

 





사진은 당시 모습인데 이마빌딩 사무실이 아니고, 구기동 자택 거실에서 모습이다. 당시 대쪽 판사로 통했던 이 변호사는 국무총리로 헌법에 명시된 국무위원 임명제청권을 제대로 보장하라고 김영삼 대통령(YS)에게 대들다 총리에서 물러난 상태였다. 임명권자인 대통령에게도 법대로를 주장하다 총리직을 버린 그의 인기는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았다.


기자와 만났을 때 이 변호사는 YS와 싸우고 총리직을 내던진 후 다시 YS와 독대, 막 정치에 뛰어든 상태였다. 기자는 <민족일보 사장 조용수 평전>이라는 본인이 쓴 책을 이 변호사에게 줬다. 약간 떨리는 손으로 책을 받아 쥔 이 변호사는 어떤 인연으로 이 사람의 평전을 쓰게 됐는가라고 물었다.


기자는 나름 책을 쓰게 된 사연을 얘기했다. 이 변호사는 한동안 허공을 보더니, “재판정에서 그의 잘생긴 얼굴과 표정을 보면서 사형을 선고하기에 너무 아까운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그리고 그는 자신의 35년여 판사 생활 중 가장 생각나고 아쉬운 재판이라고 회한을 밝혔다.


여기서 민족일보 사건이란 19615.16 군인 세력은 쿠테타를 감행하자마자 일간신문사인 <민족일보> 조용수 사장을 간첩으로 몰아 사형시킨 우리 언론사 최대의 필화사건을 말한다. 이회창 판사는 이 재판을 진행한 혁명재판소 1심 심판관으로 '조용수 사장 사형' 판결문에 서명했다.


이 변호사는 오판이라는 표현은 하지 않았지만, 완곡하게 잘못된 재판임은 인정했다. 그러면서 자신이 이 판결에 참여할 수 밖에 없었던 이유를 해명했다. 이 판사는 고시에 합격 후 첫 근무지로 인천지법으로 발령을 받았다. 그런데 5.16 쿠데타가 나고 혁명재판소가 만들어지면서 판사 차출 지시가 내려왔는데 아무도 가지 않았다. 결국 연조가 낮은 판사부터 차출돼다 보니 자신이 포함됐다는 것이다.


나중에 이 변호사의 한 측근 법조인은 당시 혁명재판소에 차출되지 않으려고 빼다가 위관급 군인에게 쪼인트(정강이)를 까인 판사도 있다고 귀뜸하기도 했다.(그만큼 이 변호사는 억지로 끌려가 판결에 참여할 수밖에 없었다는 점을 강조했다)


어찌됐든 이회창 판사는 이후 승승장구, 대법관까지 올랐고 이른바 소수의견을 많이 내 대쪽판사라는 이름을 얻었다. 그리고 감사원장 시절에는 군 최대 비리인 율곡비리를 감사하고, 국무총리로 대통령과 맞장을 떴다.


그런 그가 신한국당에 입당하자 지지부진하던 당의 지지율은 단숨에 올라갔다. 이회창 변호사는 선대위원장으로 4.11 총선에서 승리를 거뒀다. 이들을 YS의 아들 김현철이 발굴했다고 해서 김현철 키드라고 불렀다. 이들이 바로 이회창 변호사를 비롯, 황우여 새누리당 대표, 홍준표 경남지사, 김문수 경기지사 등이다.


이런 승리를 바탕으로 이회창 변호사는 1997년 대선에서 유력한 대권주자로 떠올랐다. 1997년 봄 대선을 8개월 여 앞둔 시점에서 그의 지지율은 70%가 넘었다. 여세를 몰아 그는 정치입문 1년 반 만에 집권 여당 총재가 됐다. 그가 차기 대통령이 될 것이라는 것에 의문부호를 다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그러나 아들의 병역 기피와 함께 35년 전 자신이 내린 정치사건의 판결이 그를 옥죄기 시작했다. 바로 한국 최대 언론탄압의 주역이 폭로되고 이 문제가 공론화되기 시작한 것이다


1997년 대선을 앞두고 TV토론에서 이 문제를 집요하게 물고 늘어진 패널이 바로 박원순 변호사(현 서울시장)이다. 당시 MBC 대선후보 TV토론에서 박원순 변호사는 이회창 후보에게 조용수 사장에 대한 사형선고는 소급입법이며 위헌이라는 사실을 몰랐느냐고 질문했다. 이런 질문에 이 후보는 당혹스런 표정으로 “(당시)내가 위헌 여부를 판단할 위치에 있지 않았다고 변명했다.


결국 압도적 지지율을 기록하던 이 후보는 대선에서 낙선했다. 5년 후 이회창 변호사는 다시 대권에 도전했다. 하지만 그가 사형을 판결한 민족일보 사건의 저주는 계속 그를 괴롭혔다. 이 후보는 이 '민족일보의 저주'에서 벗어나기 위해 조용수 사장 묘소를 찾아 사죄하려 했지만, 보수 측근의 만류로 성사되지 못했다.


2005215일 국회본회의 대정부 질문에서 송석찬 의원은 이회창 총재는 우리나라 역사상 최대의 언론말살 사건인 민족일보 사건의 담당 판사로서 반민주 악법의 칼날을 휘둘러...(장내 소란) 언론말살과 인권탄압이라며 이 총재를 신랄하게 비난했다. 이런 비난에 이 총재는 분명하게 해명하지 못했다. 결국 이 후보의 대권 재수도 실패로 끝났다.


2008년 이 민족일보 사건도 재심을 통해 무죄로 밝혀지면서 이회창 판사의 판결은 오판임이 드러났다. 이회창 변호사가 두 번에 거친 대권재수에 실패한 이유는 여럿이겠지만 그가 내린 민족일보 사건 판결이 매우 큰 요인이었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다.


실제 1997년 대선이 끝난 후 이회창 후보 측의 한 인사는 기자에게 원희복 때문에 38만 표가 날아갔다고 말하기도 했다. 38만 표는 당시 김대중 당선자와 표차이다. 이는 기자가 이회창 판사의 민족일보 사건 판결 사실을 처음으로 폭로했기 때문이다.


판사는 자신이 내린 판결에 대해 죽을 때까지 아니, 죽어서도 검증받아야 한다. 정치적 사건에 대한 판결은 더욱 그렇다. 이번 통합진보당 이석기 내란음모 사건에 대해 유죄를 선고한 김정운 판사 역시 그런 운명에서 자유롭지 못하다김 판사의 이번 판결은 유령처럼 평생, 아니 죽어서도 그의 주변을 맴돌 것이다김 판사가 대법관, 아니 정치에 뛰어들면 더욱 그럴 것이다. 


너무 당연한 얘기지만 판사가 자연인으로 맘 편하게 살려면, 진실을 바탕으로 양심과 역사에 회한 없는 판결을 해야 한다. 비록 대법관까지 가는 영화를 누렸지만 말년에 쓸쓸한 회한을 토로했던 김갑수, 이회창 판사의 예가 그것을 웅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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