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직히 대답해 주세요. 교사와 일반 공무원 둘 중 어디가 노조와 어울린다고 생각하십니까"(차봉천 전국공무원직장협의회총연합 위원장)"사용주(국민)가 동의하지 않으면 안돼요. 법이 만들어져야 합니다"(이근식 행정자치부 장관)
전국공무원노동조합 출범 전인 지난 2월22일 행자부 장관은 노조를 결성하려는 전공련 위원장을 만났지만 서로의 입장만 확인한 채 끝났다. 그래도 범법자로 취급해 대화조차 하지 않던 행자부가 이들을 만났다는 것이 변화라면 변화다.

지난 23일 '예정대로' 공무원노동조합이 결성됐다. 전체 84만여 공무원 중 이미 노조가 결성된 분야를 제외한 30여만명이 대상인 거대 노동조합이다. 정부는 이날 집회에 참가한 공무원을 '공무원은 노동운동 기타 임무 이외의 일을 위한 집단적 행위를 하여서는 아니된다'는 국가공무원법 66조 위반으로 사법처리 및 징계하기로 했다. '초법적 특단의 조치'가 없는 한 앞으로 전개될 양상은 뻔하다. 정부의 대규모 고발.징계-대량 해직 불복-극한 투쟁 반복이 그것이다. 결국 1989년 교사들이 전국교직원노동조합을 결성할 때와 비슷한 과정을 겪을 전망이다.

사실 공무원노조 결성에 대해 정부는 '명분'에서 지는 싸움이었다. 공무원도 공법상 고용관계로 파악하는 것은 이미 세계적 추세다. 그래서 국제노동기구(ILO)도 공무원노조 인정을 권고했고,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가입 때 이미 공무원노조 도입을 국제적으로 약속했다. 더구나 이것은 현 대통령의 공약이고 노사정위원회에서도 약속된 사항이다. 시기의 문제일 뿐 공무원노조는 예정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런데도 정부는 시기상조 혹은 국민적 공감대 미흡이라는 이유로 '불가'를 고집했다. 입헌군주제에서나 통용됐던 공무원의 국가에 대한 복종을 강조하는 특별권력관계론을 거론하는 시대착오를 보이기도 했다.

뒤늦게 행자부는 노조라는 명칭만 빼면 공무원의 단결권과 단체교섭권을 인정하겠다고 했지만 이미 노동조합이라는 이름과 강령까지 확정된 상태에서 뒷북치기였다.

정부는 공무원노조가 이만큼 진전됐다면 당연히 국가공무원법 68조 개정을 공론화했어야 했다. 이 조항은 "공무원은 형의 선고.징계처분 또는 이 법이 정하는 사유에 의하지 아니하고 그 의사에 반하여 휴직.강등 또는 면직을 당하지 아니한다"는 공무원의 신분보장 장치다. 이 조항은 공무원에게 매우 매력적이다. 최근 한국행정연구원이 공무원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공직을 선택한 이유'로 39.7%가 신분보장 때문이라고 대답할 정도다.

문제는 이 조항이 민간에 비하면 엄청난 특혜라는 점이다. 구조조정에 속수무책인 민간기업 근로자에 비하면 이 조항은 가히 '철밥통'을 보장해주는 안전판이다. 세 수입으로 공무원 월급도 주지 못하는 자치단체가 수두룩하지만 불안해 하는 공무원은 한명도 없다.

출범한 공무원노조는 조합원의 신분보장을 최우선으로 둘 것이 뻔하다. 이래선 국민적 공감을 얻지 못한다. 공무원노조가 세계적 추세라면 공무원도 자연스럽게 해고할 수 있는 것 역시 세계적 추세다. '관료의 나라'라고 부르는 일본도 이미 공무원의 특권적 신분보장제를 폐지하는 공직개혁에 나서고 있다.

사법처리 및 징계를 강조하며 국가공무원법 66조만 보고 있는 정부, 특권인 국가공무원법 68조를 사수하려는 공무원노동조합. 바로 위아래 있는 두 법조문 중 서로에게 유리한 것만 고집하는 것이 지금 공직사회의 모습이다. 이러는 동안 공무원조직은 극한 갈등에 치닫거나 제어할 수 없는 이익집단으로 전락할 것이 뻔하다. 여기서 최종 피해자는 물론 국민이다.

원희복/ 지방자치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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