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울뿐인 부패방지법

이른바 '홍(弘)3'으로 일컬어지는 대통령 세 아들에 대한 비리 의혹이 연일 신문지면을 장식하고 있다. 그 중 누구는 사법처리가 임박했다는 소문도 들린다. 과거 정권에서처럼 대통령의 자식이 사법처리된다는 것은 불행한 일이다.김대중(金大中) 대통령은 지난달 26일 간접적인 방식으로 자식 문제에 유감을 표명했다. 그리고 그 주변에선 "야당시절 그렇게 고생시켰는데, 월급쟁이 한번 못한 한(恨) 때문에…"라는 변명 아닌 변명이 흘러나온다. 이런 식의 김대통령 유감 표현 방법은 자식을 둔 아버지 입장에만 머물러 있다는 느낌이다.

사실 김대통령은 자식 문제에 관한 한 사태를 스스로 초래한 측면도 없지 않다. 대통령은 취임 후 줄곧 공무원윤리법상 하도록 돼 있는 직계 존비속의 재산 공개를 거부해왔다. 막내 아들이 미국에서 호화주택을 가졌느니 마느니로 소송이 벌어지고 있는데도 고지 거부제를 활용했다. 언론의 지적에도 오불관언으로 일관했다.

물론 독립 가정을 이루고 있는 자식은 고지를 거부할 수 있어 불법은 아니다. 그러나 당초 직계 존비속까지 공개토록 했던 법의 제정 취지는 고위 권력자의 가족이 적잖게 물의를 빚었기 때문이다. 대통령부터 고지 거부 제도를 활용하는데 그 밑의 공직자에게 바르게 신고하라고 할 수는 없는 일이다. 만약 대통령이 자녀의 재산을 공개하고 언론의 검증을 받았더라면 지금처럼 불행한 사태는 예방할 수 있었을지 모른다.

그러나 국가적으로 더 불행한 일은 청와대, 국정원, 검찰, 경찰 등 이른바 국가의 율령(律令)체계를 지탱하는 기관이 줄줄이 불명예 대상에 올랐다는 사실이다. 이것은 대통령의 입장에서 자식 문제보다 더 부끄러워 해야 할 일이다.

여기에도 대통령에게 책임이 있다. 김대통령은 지난해 부패를 근절하기 위해 부패방지법을 제정했다. 그리고 부패방지위원회가 출범해 활동하고 있다. 그런데 그 부패방지법 제8조에는 공무원행동강령을 대통령령으로 제정하도록 돼 있다. 지금까지 공무원의 윤리에 대해 여러 지침이나 지시가 있었지만 대부분 선언적인 내용일 뿐, 법령에 명시되지 않았다. 그래서 아예 부패방지법에 대통령령으로 규정토록 한 것이다.

그러나 지난해 7월 이 법이 제정됐고, 올 1월 부패방지위원회가 출범했지만 그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공무원행동강령은 제정하지 않고 있다. 법률에 대통령령으로 정하도록 했으면 대통령은 이른 시일 내에 그 령(令)을 만들어야 한다. 이 역시 대통령의 잘못이다.

부패 방지를 위해 법이 필요하다고 난리를 떨고, 부패방지위는 번듯한 건물에 입주하면서 하드웨어를 갖췄지만 사실상 핵심인 공무원의 구체적 부패행위를 규제할 소프트웨어는 지지부진한 상태로 있는 것이다. 당초 공무원행동강령은 총리실을 위시해 행정자치부가 만들도록 돼 있어 거액의 용역비를 들여 기본안까지 마련했다. 그러나 해당 공무원들은 자신의 목을 죄는 이 강령을 차일피일 미루더니 결국 부패방지위로 떠넘겼다. 부패방지위도 시간을 끌다가 최근에야 이와 관련한 공청회를 한번 열었을 뿐이다.

이 강령에는 최고 공직자 아들이 고액의 웅담을 선물받고, 고위 공직자가 주식을 받고, 검찰 간부가 수사기밀을 누출하고, 심지어 자신의 딸을 공무원으로 채용하는 행위 등을 규제할 수 있는 내용이 다 들어 있다. 대통령이 공무원행동강령을 제때 만들었다면 조금이나마 이런 부패를 예방할 수 있었을 것이다.

물론 대통령이 이렇게 구체적인 사안까지 파악하지 못할 수도 있다. 그러나 부패방지위를 만든 것을 대통령 스스로 자신의 치적으로 꼽는다면 좀더 치밀하게 점검했어야 했다. 누구는 우리 사회의 부패 문제를 5,000년간 누적된 구조적 문제라고 했다. 그러나 공직자 부패 문제에서 가장 큰 책임은 두말할 것 없이 정부 자신, 그 중에서도 현직 대통령이다.

원희복
/ 지방자치부 차장wonhb@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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