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헌 주장의 속셈

요즘 우리 헌법을 놓고 "제왕적 대통령제가 바로 문제"라고 얘기하는 사람이 많다. 이들은 대통령 아들이 줄줄이 감옥에 간 권력형 비리는 제왕적 대통령제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아예 한 노정객은 수십년간 그 제왕적 권력의 주변을 맴돌았으면서도 '황혼에 더 가야 할 길' 중의 하나로 제왕적 대통령제를 끝내는 것이라고 되뇌고 있다. 이들은 지금 대통령제가 우리 정치와 사회에서 '악의 축(軸)'이라며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그들의 말대로 우리의 대통령제는 정말 견제나 통제가 불가능할 만큼 제왕적인가. 결론부터 말하면 천만의 말씀이다. 헌법상 규정된 우리의 대통령 권한은 대통령제를 하는 프랑스나 미국에 비하면 정말 조족지혈(鳥足之血)이다.

하나하나 따져보자. 우리 대통령 임기는 5년 단임이다. 미국 대통령 임기는 4년이지만 특별한 문제가 없는 한 연임후보가 된다. 프랑스는 7년이고 연임 제한도 없다. 임기면에서 우리의 대통령은 미국이나 프랑스 대통령보다 훨씬 제왕적이지 못하다.

권한도 그렇다. 미국 대통령은 실질적인 행정의 수반이고 내각은 의회에 책임을 지지 않는다. 미 대통령은 우리 대통령에게 없는 하원 해산권을 갖고 있다. 미국은 연방제라는 체제이긴 하지만 대통령 권한은 분명 우리보다 제왕적이다. 요즘 프랑스 이원집정부제 운운하는 사람이 많지만 프랑스 헌법을 한번이나 보고 하는 소리인지 모르겠다. 프랑스 대통령의 헌법상 권한은 정말 제왕적이다. 프랑스 대통령은 국회에 아무런 책임이 없어 총리를 임명하는데 국회동의 절차가 필요없다. 프랑스 대통령은 계엄선포권은 기본이고, 하원 해산권에다 과거 우리 유신헌법에 있던 긴급조치권 비슷한 권한까지 가지고 있다. 게다가 프랑스 대통령은 사법부의 핵심인 헌법평의회 의장과 일부 위원, 사법고등평의회 구성원까지 임명할 수 있어 사법부까지 통제할 수 있다. 프랑스 대통령은 명실상부한 제왕적 권한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이에 비해 우리 대통령은 총리를 임명할 때도 국회의 동의를 얻어야 하고, 장관의 생사여탈권(불신임)도 국회가 가지고 있다. 우리 국회는 대통령 탄핵안을 발의할 수 있지만 대통령은 국회를 해산할 권한이 없다. 아무리 따져봐도 우리의 대통령 권한은 미국이나 프랑스에 비해 미약하기 짝이 없다. 더구나 우리 총리의 권한은 프랑스 총리보다 월등하다. 국회의 동의를 통해 임명된 우리 총리는 국무위원 임명제청권과 해임건의권이 헌법에 보장돼 있다. 정부조직법에 부여된 총리권한도 막강하고 상대적으로 대통령 권한은 미약하다.

프랑스의 이원집정부제는 1986년 미테랑 대통령이 총선에서 패해 여소야대가 되자 야당에 총리를 양보해서 생긴 것이다. 물론 이것은 헌법에도 없는 조치였다. 동거정부라는 것은 비정상적인 정치상황에서 한시적으로 이뤄지는 '정치적 타협'일 뿐이다.

여소야대가 아닐 경우 프랑스 대통령의 권한은 제왕적으로 돌아간다. 프랑스는 헌법상 권력구조 조항으로 운영되는 것이 아니라 한차원 높은 국민의 의사를 존중하는 바탕에서 정치적 타협이 이뤄지는 것이다. 우리는 어떤가. 의원 빼가기로 국민의 뜻을 왜곡하는 것은 다반사고, 국회 다수당이 반대하는 총리를 인준해 달라고 배짱을 부리다 국회 본회의장에서 투표함을 뺏고 빼앗는 초등학교 반장 선거보다도 못한 행태를 보인 것이 우리 정치권이다. 심지어 국회를 해산할 권한도 없는 대통령이 총으로 국회를 해산하는 헌법유린을 자행하기도 했다.

결국 문제는 '제왕적 대통령제'라는 권력구조에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니라 대통령의 '제왕적 사고'나 그 주변에서 '제왕적 권력욕'을 추구하려는 무리들에게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정치권의 일부 인사들이 제왕적 대통령제가 문제라고 목소리를 높이는 의도는 간단하다. 개헌이라는 중대사를 통해 실추된 자신들의 정치적 입지를 만회하려는 것이다. 더이상 헌법의 주인인 국민을 우롱하지 말아야 한다.

원희복 / 지방자치부 wonhb@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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