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희복 기자의 타임캡슐(54)
정치사건 판사의 말년고뇌-김갑수
‘판사는 판결로 말한다’는 법언이 있다. 판결의 독립성을 강조하는 말이지만 자신의 판결에 대해 실제적 혹은 역사적 책임을 회피하는 방편으로 사용되기도 한다. 그러나 현실과 동떨어진 예술도, 문학도 혹독한 비평의 세계가 있는데, 가장 현실과 밀접한 사법적 판결에 비평이 없을 수는 없다.
사실 판사의 판결문은 사법부 내부나 학계의 ‘판례평석’을 통해 냉엄하고도, 혹독하게 평가받는다. 하물며 정치, 사회, 역사적인 사건의 판결은 말 그대로 정치, 사회, 역사적 영역에서 혹독하게 판례평석을 받아야 한다. 이 역사적 판례평석에는 소멸시효도 없다. 대표적 사례가 1959년 진보당 사건의 김갑수 판사이다.
사진은 진보당 사건 상고심에서 조봉암 당수에게 사형을 선고한 김갑수 판사의 1990년 모습이다. 나이 79세, 그러니까 세상을 떠나기 5년 전인 말년의 모습이다. 알려진 대로 진보당 사건은 이승만의 정적인 조봉암을 사법적으로 제거하고, 결국 우리나라 최초의 진보정당을 해산시킨 ‘매우 정치적이고도 역사적 사건’이다.
1989년 죽산 조봉암에 대한 재심청구가 추진됐다. 이 때 기자는 그를 명동의 합동법률사무소에서 인터뷰 한 적이 있다. 김갑수 변호사도 말년이고, 재심청구가 추진되고 있기 때문에 마지막으로 진보당 판결에 대해 진실을 말할까 싶어서였다.
그는 지병으로 거동이 불편했다. 사진에서는 웃고 있지만 당시는 매우 피곤하고 힘든 모습이었다. 그는 진보당 판결에 대해 “설혹 정치적 의도로 기소됐을지 모르지만 재판과정에서 정치적 개입은 없었다”고 강변했다. 기소한 검찰(이승만 정권)에게 책임을 돌리는 답변이었다. 아마 이것이 김갑수 변호사의 마지막 인터뷰 아니었을까 생각된다.
김갑수 판사는 진보당 판결로 대법관, 대법원장 직무대행까지 되는 호사를 누렸지만 이승만 정권 몰락 후 ‘만인의 적’으로 전락했다. 그는 ‘진보당과 조봉암 법살’ 이후 자신의 판결에 대해 혹독한 오판 논란과, 해명을 요구받았다. 판결 후 30년이 지나서도 계속 제기되는 의혹에 대해 ‘진보당 판결은 오판이었나’ ‘진보당 사건과 나’ 등의 글로 해명해야 했다.
그리고 수십 년이 지나서도 기자들의 집요한 질문에 응답해야 했다. 김 변호사는 말년에 기자와 만났을 때 체념한 표정으로 “진보당 사건 판결 논란은 내가 죽을 때까지 계속될 것”이라며 자신이 내린 판결에 대한 회한을 이야기했다.
그는 최초의 진보정당 당수에게 사형을 선고해 죽게 만들고, 진보정당을 해산시킨 법률적 장본인이었지만, 1981년 스스로 신정사회당(김철 사회당과 통합)이라는 나름 진보정당을 만들어 총재가 되는 아이러니한 삶을 살았다. 이런 행보는 자신의 오판에 대한 무언의 속죄이지 않았을까?
결국 이 진보당 사건은 53년 후 후배 법관들에 의해 ‘오판’으로 결론이 났다. 요즘 과거사 여러 사건들이 재심을 통해 진실이 밝혀지고 있다. 사법부가 그 엄격한 조건의 재심을 수용하고, 사형을 무죄로 번복하는 것은 사법부의 통렬한 자기 고백이다.
최근 통합진보당 이석기 의원에 대한 1심 선고공판에서 수원지방법원 김정운 판사가 검찰의 사실관계를 인정하고 모두 중형을 선고했다. 이 판결에 대해 ‘오판이냐 아니냐’ 논란이 거세게 일고 있다. 이 판결 역시 과거 진보당 사건처럼 현역의원 구속, 정당해산과 맞물려 있다는 점에서 매우 정치적이고, 역사적 사건이다.
이는 이 사건이 역사적 판례평석을 요구하는 사건으로 계속 논란이 될 것이며, 김정운 판사도 김갑수 판사처럼 자신의 판결에 대해 두고두고 해명해야 할 운명이라는 것이다. 이는 정당해산을 논하는 헌법재판소의 재판관들도 마찬가지이다.
조봉암에게 사형을 선고한 김갑수 변호사가 ‘내가 죽을 때까지 진보당 논란이 계속될 것’이라고 했지만 ‘죽어서도 논란이 계속되는 것’이 바로 역사의 편례평석이다. 진정 법관들이 두려워해야 할 것이 바로 이 역사의 평결이다.
**추가; 역사적 정치 사건을 판결한 또 한사람의 대법관 출신이 바로 이회창 변호사이다. 그는 1961년 쿠데타 세력이 처음으로 조작한 민족일보 사건 심판관으로 조용수 사장에게 사형을 선고했다. 이건은 다음에 언급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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