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레지스탕스 출신 작가 스테판 에셀의 <분노하라>가 세계적 베스트셀러가 됐다. 스테판 에셀이 이 책을 출간했을 때 나이가 92세였다. 인생의 모든 것을 달관하고 용서할 나이에 그는 “어떤 권력에도, 어떤 신에게도 굴복할 수 없는 것이 인간”이라며 “최악의 태도, 무관심은 인간의 기본요소중 하나를 잃어버리는 것”이라고 다그쳤다. 스테판 에셀의 이 다그침은 세계적으로 큰 반향을 일으켜 세계의 젊은이들이 분노하며 들고 일어섰다. 


요즘 우리 젊은이들을 보면 불의에 대한 분노는 커녕 기개를 잃은지 오래다. 심지어 싸움 잘하기로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정치인마저 분노를 잃었다는 지적이 많다. 






사진은 1960년 4월6일 서울 시청앞에서 열린 민주당 3·15부정선거 규탄 대회 모습이다. 마이크를 들고 3·15 부정선거 진상을 폭로하는 사람이 당시 민주당 3·15부정선거 진상위원장인 윤보선 의원(아호 해위)이다. 그 오른쪽에 무거운 진공관 앰프를 메고 서 있는 사람이 김대중 당시 민주당 선전부 차장(아호 후광)이다. 우연의 일치인지 이후 윤보선 의원은 4대, 김대중 차장은 15대 대한민국 대통령이 됐다. 


사실 해위는 이승만 사람이었다. 상해 임시정부에서 같이 활동했고, 일제시대 이승만이 미국에서 공부할 때, 그는 영국에서 공부했다.(모교인 에딘버러대학은 올 3월 윤보선기념심포지엄을 열었다) 또 해위는 자유당 이승만 대통령 밑에서 서울시장과 상공부장관을 지내기도 했다. 하지만 해위는 이승만의 반민주적 행태에 분노, 그와 결별하고 야당의 길을 걸었다. 


사진은 바로 그때, 야당의 3·15부정선거 진상위원장 시절의 모습이다. 이런 노력 덕분에 4·19혁명이 일어나고, 자유당은 몰락했다. 2공화국이 들어서 사진속 해위는 비록 내각책임제 정권이지만 대통령이 됐고, 후광은 대변인이 돼 중진 정치인으로 성장하는 발판을 만들었다.


해위는 민주당 구파이고, 후광은 민주당 신파로 파벌은 달랐지만 정치행보는 비슷했다. 사진 속 모습처럼 민주주의에 대한 확고한 신념과 이를 지키기 위한 ‘분노’가 그 공통점이다. 5·16 군사쿠데타 이후 두 사람은 다시 고난의 야당 길을 걸었다. 하지만 민주주의에 항거하는 ‘분노’는 멈추지 않았다. 


해위는 나이 80이 넘어서도 민주회복을 위한 재야의 구심점 역할을 했다. 그의 노년의 삶은 스테판 에셀과 일면 비슷했다. 박정희 정권은 그에게 간첩혐의를 씌웠지만 전직 대통령을 투옥한 행위는 오히려 국제적 지탄을 받았다.


후광은 5·16 쿠데타가 나자 도망간 그의 정치적 대부 장면 총리와 달랐다. 그는 투옥·납치·테러 등을 당하면서도 민주주의를 훼손하는 세력에 맞서 ‘분노’를 행동으로 입증했다. ‘행동하는 양심’이라는 그의 구호는 암울한 시기 민주주의를 갈구하는 마지막 불빛이었다. 결국 그는 1997년 평화적 정권교체를 이뤄낸 대통령이 됐다. 


지난 대통령선거에서 국가정보원 직원이 선거에 개입하고 이를 수사하던 경찰이 진실을 은폐한 것이 드러났다. 야당인 민주당은 사진 속 시점처럼 ‘3·15 부정선거’에 비유하고, 여당은 ‘3·15 부정선거에 비유하는 것은 종북세력의 주장’이라고 반박하고 있다. 국민들은 마치 53년전 사진속 타임캡슐이 열린 것처럼 혼란스러워하고 있다. 


이번 사건을 3·15 부정선거에 빗댄 것이 합당하느냐 여부를 떠나 국가권력이 선거에 개입한 것은 명명백백 민주주의를 부정한 국기문란 행위이다. 게다가 이 사건 수사를 담당했던 여성 경찰이 “한마디 더하면 가만두지 않겠다”는 상부의 수사 은폐 압력까지 폭로했다. 이 사건은 일파만파 커지고 있다. 그런데 정작 당사자인 민주당은 조용하다. 그래서 국민들은 ‘야당은 뭐하냐’는 비난이 빗발치고 있다. 


유신독재시기, 평화운동가 함석헌 선생은 ‘생각하는 백성이라야 산다’고 설파했다. 민주주의를 찾으려면 국민이 깨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에 빗댄다면 앞의 사진은 민주주의를 위해 ‘분노하는 정치인이라야 대통령 된다’는 말을 하고 있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