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편집장 편지

시대착오 정부의 근본 원인

시대착오 정부의 근본 원인

 

이명박 대통령이 뉴질랜드 방문 기간 중 “왜 농림부 장관이 외교부 장관처럼 양복에 넥타이를 매고 다니냐”는 한마디에 장태평 농림부 장관이 ‘잽싸게’ 작업복으로 갈아 입고 국무회의에 참석했다고 합니다. 이달곤 행정안전부 장관과 유인촌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은 녹색성장 프로젝트에 동참하겠다는 의미로 자전거 출퇴근을 한다고 합니다.

정말 시대착오적 행태입니다. 똑같은 논리라면 행정안전부 장관은 소방관 옷에 경찰모를 쓰고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양복을 입고 있는 국방부 장관은 휴전 상황으로 데프콘(비상) 상태에 있는 우리 안보 현실을 모르는 장관이겠군요. 군복 상의에 예비군복 하의 정도를 입어야 업무에 맞는 복장 아닐까요. 법무부 장관은 법복을 입어야 ‘법대로’가 확실히 되겠지요.

물론 작업복을 입으라는 것은 책상머리에 앉아 있지 말고 ‘현장을 뛰라’는 의미일 것입니다. 그런데 장관이 뛰어야 할 현장과 국장, 계장, 부원이 뛸 현장은 전혀 다릅니다. 장관이 뛸 현장은 작업복을 입고 뛰는 현장이 아니라 유관 기관, 전문가 집단, 관련 해외 기관입니다. 농림부 장관에게 현장은 논밭이 아니라 농촌경제 유관단체와 전문가, 해외 농업기관이나 단체인 것입니다.

행정에서 직급별 행정비용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월급, 사무실 유지비, 용품비 등 직급별로 공무원 1인당 들어가는 비용을 모두 합해 계산한 것입니다. 2002년 기준으로 보면 장관은 시간당 11만8000원, 과장 2만8000원, 계장은 1만6000원입니다. 따라서 장관이 현장행정 한답시고 시장에 가서 2시간 장을 본 행위는 계장을 시킨 것과 비교해 행정비용 면에서 3만2000원에 할 수 있는 일을 23만6000원에 한 것으로 세금 20만4000원을 낭비한 것입니다.

행정의 효율을 따져야 할 이달곤 행안부 장관이 승용차로 15분 걸려 출근할 것을 자전거로 1시간 걸려 출근했다면, 그것도 수행비서까지 매일 그런다면 업무를 거꾸로 하는 겁니다. 장관은 시장이나 길바닥에 시간을 버려선 안됩니다. 촌음을 아껴 정책 건의를 듣고 해외 시장 동향을 체크해 고도의 정책적 판단을 해야 합니다. 전문기관의 집계가 맞지 않으면 그 시스템을 개선해야지 장관이 작업복을 입고 현장을 뛰어선 안 됩니다. 그게 선진 행정입니다. 그러고 보니 요즘 정부가 하는 일마다 시대착오적이라는 평가를 받는 이유는 바로 대통령의 이런 구시대적 행정 인식 때문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얼마 전 교육과학부가 실시한 초·중·고 일제고사와 그 성적 공개도 마찬가지입니다. 전국 학생들의 성적을 매겨 성적이 낮은 학교의 선생은 불이익을 주겠다면 시험·채점 부정이 일어날 여지는 충분합니다. 선생이 찍소리 못했던 1960년대에는 부정이 있어도 덮으니 문제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세상이 달라졌습니다. 교육과학부의 해프닝은 세상이 달라진 것은 생각하지 않고 과거 방식을 답습하는 교육행정이 낳은 당연한 결과입니다. 시대착오적 정부의 근본 원인, 그것부터 고쳐야 장관도 편하고 국민도 편합니다.

<원희복 편집장 wonhb@kyunghyang.com>

 2009/03/24 (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