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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장 편지

초(超) 슈퍼클래스가 문제입니다

최근 ‘슈퍼클래스(Superclass)’라는 책을 읽었습니다. 지구 상 60억 인류를 움직이는 6000여 명, 그러니까 0.000001, 즉 100만 분의 1에 해당하는 엘리트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그들은 정치·경제·사회·문화·종교 등 모든 영역에서 인류의 행동양식을 좌지우지하는 세력이라는 겁니다. 이 책에서 관심을 끄는 것은 바로 그 슈퍼클래스에 대통령이나 재벌회장 같은 전통적 권력과 금력을 가진 인물만 포함시키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중에는 영화배우 안젤리나 졸리처럼 영화계에서 얻은 명성을 사회사업에서 완성하는 인물도 있고, 시리아의 무기밀매상과 같은 암흑가 두목도 슈퍼클래스에 포함되었다는 사실입니다. 한국인으로는 순복음교회 조용기 목사와 반기문 유엔사무총장이 들어 있습니다. ‘아쉽게도’ 이명박 대통령의 이름은 보이지 않습니다.

이번 호 Weekly경향에서는 고위 공무원단을 분석했습니다. 고위 공무원단이란 공무원 중 과거 1급(관리관)·2급(이사관)·3급(부이사관)을 통합한 것으로 말 그대로 직급이 높은 중앙부처 공무원을 말합니다. 그들은 1500여 명으로, 60만5000여 명(6월 30일 기준)에 이르는 행정부 공무원의 인재 중 인재입니다. 이들은 국민의 교육에서 복지는 물론 청와대, 국정원, 검찰, 국세청 등 권력기관의 핵심부를 차지하고 있는 사람입니다. 그들은 비록 관 주도이지만 종교·예술정책까지 집행하고 있습니다. 이번 호 Weekly경향은 바로 그 코리아 슈퍼클래스들의 출신 학교를 면밀히 따져보고 과거 정부와 어떤 차이점이 있는지 비교·분석했습니다. 그랬더니 역시 고소영(고려대·소망교회·영남) 인맥이 두드러지더군요.

하지만 심각한 문제는 이 슈퍼클래스보다 높은 지위에 있는 초(超)슈퍼클래스, 그러니까 고위 공무원단보다 높은 지위에 있는 장·차관 등 정무직 수준입니다. 그나마 대한민국의 슈퍼클래스는 괜찮은데 그 위에 있는 초슈퍼클래스 수준이 엉망이라는 겁니다. 솔직히 초슈퍼클래스라고 부르기도 민망한 역량 미달인 사람도 적지 않아 보입니다. 지난 호에서 지적했다시피 국가인권위원회 위원은 비상임이지만 차관급으로 매우 중요한 사람입니다. 그런데 집단수용시설을 운영하면서 정부 보조금을 횡령했고 집단 수용 과정에서 인권유린 사태를 일으킨 장본인을 기가 막히게 선별해 임명했습니다. 어떻게 국가인권위원으로서 최악의 조건만 갖춘 사람을 그렇게 적재적소에 심을 수 있을까 기가 막힐 따름입니다. 바로 전 국가인권위원도 비슷한 사람을 임명하려다 도중에 취소한 적이 있습니다.

무엇보다 11년 전 외환위기를 불러온 장본인을 경제수장으로 임명한 것도 그렇습니다. 경제학자들은 물론 여당 내에서도 문제가 있다는 사람을 경제수장으로 임명하니 결국 그는 우리 경제를 꼭 11년 전 수준으로 되돌려놓고 말았습니다. 물대포를 맞아도, 집회·표현의 자유를 속박해도, 해직기자라는 생경한 용어가 난무해도 국민이 꾹꾹 참은 것은 이 정부가 경제를 살릴 것이라는 기대 때문입니다. 하지만 결국 망쳐놓고 말았습니다. 인사가 아닌 망사(亡事)를 한 탓입니다.

<원희복 편집장 wonhb@kyunghyang.com>

2008/10/21 (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