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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장 편지

눈뜬 장님 정부

우리나라 전자정부 수준은 IT 강국답게 세계 몇위 안에 들 겁니다. 지금도 핵심 정보화사업에 매년 수천억 원, 각 부처 정보관련 예산까지 합하면 수조 원의 예산을 정보화 사업에 투입하고 있습니다. 그 결과 지금 주민등록 전산시스템에서 부동산 전산 시스템, 은행·보험 심지어 교육·병역·범죄시스템까지 무서울 정도로 정보화가 이뤄져 있습니다.

게다가 이 정보를 한데 모아 불필요한 서류를 줄이는 법까지 만들어 은행대출을 받을 때 제출하던 주민등록 등·초본을 없애는 등 행정혁명을 준비한다고 합니다.

그래서 행정자치부 전산망에 주민번호만 치면 전국에 있는 부동산 소유현황이 일목 요연하게 나옵니다. 부동산 실거래 제도가 도입됐고 전산망을 법원 등기 전산망과 연결하면 실시간 부동산 거래내역를 파악할 수 있습니다. 누가 미성년자인 손자에게 부동산을 증여했고, 전국의 미성년자가 소유한 부동산이 몇만 평이나 되는지 등 정말 부동산 흐름이 한눈에 보입니다. 이 모두 그 망국적인 부동산 투기를 잡기 위해 오래 전부터 엄청난 자금을 투자해 만든 시스템입니다. 아마 미국이나 일본도 이렇게 치밀한 부동산추적 시스템을 갖추지 못했을 겁니다.

이렇게 실시간 부동산을 추적하는데도 정작 정부는 부동산 투기를 잡지 못합니다. 잡기는커녕 계속 커지고 있습니다. 눈뜬 장님도 이런 장님이 없습니다. 아예 엄청난 예산을 투자해 시스템을 만들지나 말지. 사실 전산 시스템은 한번 도입하면 안정화와 고도화를 위해 끊임없이 예산이 들어갑니다. 그 뒤에는 우리나라의 내로라하는 IT업체가 희희낙락하면서 일거리를 확보하고 있습니다.

부동산 정책도 마찬가집니다. 서민은 죽어나가고 건설업자만 희희낙락합니다. 대기업과 대기업 직원은 돈이 넘쳐나고 중소기업과 서민은 점심을 굶으며 절망하는 것이 지금 현실입니다. 우리 사회의 가장 심각한 문제인 양극화도 바로 여기서 비롯되고 있습니다.

업계와 관료에 휩싸여 헛발질만 하는 눈뜬 장님. 그런데도 대기업으로부터 좋은 소리 듣지 못하는 바보 같은 정부입니다.
이번주 ‘뉴스메이커’에서 서민의 현실을 전달하려 했습니다. 하지만 현실의 백분의 일, 아니 천분의 일도 전하지 못하는 것을 안타깝게 생각합니다.

<원희복 편집장 wonhb@kyunghyang.com>

2006/11/20 (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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