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편집장 편지

되살아나는 ‘꼴’ 보수의 망령

1987년 6월. 전국은 황사와 최루탄으로 뒤덮였습니다. 6월 10일 평화대행진에 참석하려던 당시 김영삼 민주당 총재는 백골단(흰색 헬멧을 쓴 무술경찰)에 끌려 강제로 닭장차에 실려 갔습니다. 야당 총재를 강제 연행하려는 백골단과 이를 거부하기 위해 닭장차의 출입구를 부여잡고 안간힘을 쓰던 김 총재의 처절한 몸싸움은 당시 암울한 시대상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상징으로 오래 오래 남았습니다. 물론 그로 인해 지긋지긋한 군정이 종식됐지만 말입니다.

정확히 21년이 지난 2008년 6월, 전국은 촛불로 뒤덮였습니다. 그리고 21년 전 똑같은 장면이 재연됐습니다. 6월 25일 미국산 쇠고기 수입 고시에 항의하던 민주노동당 이정희 의원이 닭장차에 실려 연행된 것입니다. 여성 국회의원으로 닭장차에 실리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쓰다 결국 닭장차에 실리는 모습은 21년 전 김 총재 모습 그대로입니다. 물론 둘 다 미란다원칙을 준수한다든가 하는 것이 없는 부당체포입니다.

21년이라는 차이를 두고 이렇게 똑같은 장면이 재연될 수 있다는 것이 신기할 따름입니다. 그때와 다른 점이라면 과거에 강제 연행한 사람은 백골단이지만 지금은 여자 경찰이라는 것, 김 총재는 성동경찰서에 실려 갔지만 이 의원은 은평경찰서에 실려 갔다는 점일 것입니다.

지금 곳곳에서 21년 전의 장면이 재연되고 있습니다. 친박연대 복당이니 뭐니 하는 보수세력의 결집이 그것이고 거의 사라지던 공안세력이 다시 고개를 들고 있습니다. 낡은 축음기에서나 들릴 법한 색깔 논쟁이 다시 들리고 있습니다. 보수를 넘어 ‘꼴’보수를 자처하는 세력이 군복에 완장을 차고 다시 거리를 활보하고 있습니다. 낙하산을 통한 언론 장악과 보수의 나팔수를 자처하는 해묵은 사람이 다시 필봉을 휘두르려 합니다.

그렇습니다. 지금 보수의 대반격이 시작되고 있는 것입니다. 어설픈 쇠고기 협상으로 야기된 촛불정국으로 있는 밑천 없는 밑천 다 까먹고, 첫 조각에서 당한 망신은 취임 100일도 안 돼 다시 전면 개편할 수밖에 없는 한심함, 여중생에게 조롱받을 정도로 대통령의 권위는 땅에 떨어졌으니 이대로 갈 수는 없을 겁니다. 정말 그 지긋지긋한 쇠고기 정국, 촛불정국을 끄고 싶겠지요.

이번 주는 이명박 정부가 그동안 그 수세적 촛불정국에서 탈출할 수 있느냐 없느냐는 분수령이 될 것입니다. 그만큼 보수세력을 앞세운 전방위적인 반격이 본격화된다는 것이지요. 이번 호 뉴스메이커 에서 지금 정치·사회 전반에 밀어닥치고 있는 보수세력의 실체를 확인하십시오.

문제는 이런 반격으로 지금 촛불을 끌 수 있을지 의문이라는 것입니다. 낡은 축음기 소리로 웹2.0을 넘어 웹3.0에 익숙해진 촛불 시민을 설득할 수 있을까요? 지금 촛불정국의 요인 중 하나는 바로 이 21년 전이 웅변하는 사고의 차이입니다. 세상은 이미 저만큼 변했는데 낡은 것에 매달려 있는 그 아둔함 말입니다. 정말 아둔한 것은 21년 전 역사가 주는 그 무서운 교훈을 잊고 있다는 점입니다.

<원희복 편집장 wonhb@kyunghyang.com>

2008/07/08 (화)

'편집장 편지'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이상적 인간형 찾기  (0) 2013.04.29
내가 낸 세금으로 배상해?  (0) 2013.04.29
측은 계장과 버럭 과장  (0) 2013.04.29
응어리를 만드는 정권과 푸는 정권  (0) 2013.04.29
MB 대통령을 모시는 GB 국민  (0) 2013.04.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