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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장 편지

측은 계장과 버럭 과장

노무현 정부에서 추병직 건설교통부 장관은 ‘피식 장관’이라고 불렸습니다. 국회에서 의원의 질의에 피식 비웃었기 때문에 붙은 별명이지요. 당시 노 대통령이 국회에 비굴하지 말고 당당하게 처신하라고 주문했기 때문인지 참여 정부에선 이렇게 간이 크다 못해 ‘난닝구’ 밖으로 튀어나온 장관이 많았습니다. 심지어 이해찬 총리는 국회 본회의장 단상에서 핏대를 세우며 국회의원을 면박주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국회에 대드는 국무위원의 행위는 옳은 일이 아니고 ‘간 큰’ 장관은 대부분 단명에 그쳤습니다.

장관쯤 되면 이미지도 일종의 정책입니다. 장관의 자신감 있고 여유 있는 자세는 국민으로 하여금 정책에 신뢰를 갖게 하지요. 무언가 쫓기는 듯한 자세나 신경질적인 이미지를 가진 장관은 아무리 좋은 정책을 내놔도 국민이 보기에 불안합니다. 이렇게 이미지가 중요한데, 장관이 진실 문제 혹은 능력의 밑천이 드러난 경우는 정말 구제불능입니다.

 

정운천 농림수산식품부 장관이 얼마 전 “미국산 쇠고기 수입 재개와 함께 원산지 표시제를 확대 실시함으로써 정부가 토양에서 식탁까지 국민의 먹을거리 안전을 관리할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했다”고 당당히 말했습니다. 수입되는 미국산 소의 이상 여부를 판별하는 국립수의과학검역원 검역관과 간담회 자리에서입니다.

그래서 이번 뉴스메이커에서 정 장관의 말이 얼마나 진실인지 하나하나 따져보기로 했습니다. 미국산 소의 수입과 유통 과정을 추적하면서 우리는 정 장관의 거짓말에 분노 단계를 넘어 이젠 측은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사실 수십 일째 촛불집회가 계속되는 이 상황에서 토양에서 식탁까지 먹을거리 안전을 정부가 책임지고 있다고 믿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요. 정 장관은 이번 쇠고기 정국에서 거의 망가질 대로 망가져 ‘측은 계장’이라는 별명을 얻었습니다.

 

그런 ‘가련한 이미지의 장관’이 시행하는 정책에 국민이 신뢰를 가질 리 만무하지요. 이번 촛불 정국에서 과거 공안검사 능력을 십분 발휘하고 있는 김경한 법무부 장관의 별명은 ‘서울중앙지검 공안2부장’이랍니다. 공안부장 정도가 해야 할 역할을 장관인 자신이 다 하고 있기 때문이지요. 노무현 정부에선 간 큰 장관이 많았는데 왜 이명박 정부에선 왜소한 장관이 많은지 모르겠습니다.

공무원 사회에는 행정 효율을 위해 직급별 행정비용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직급별로 들어가는 월급·사무실 임대료·사무용품비, 심지어 여비서 인건비까지 모든 경비를 시간당 산출한 것입니다. 요즘 통계는 잘 모르겠지만 과거 행정자치부 출입기자 시절인 2002년, 장관은 1시간당 11만8000원을 썼습니다. 국장급인 2급은 3만9000원, 과장급인 3급은 2만8000원을 쓰고, 계장급은 1만6000원 정도를 썼습니다.

 

지금은 액수가 훨씬 늘어났을 겁니다만 장관과 국장의 차이가 엄청나지요. 별명 기준으로 본다면 계장급 혹은 과장급인 장관은 자신의 능력보다 무려 4~5배 보수를 더 받고 있는 셈이지요. 좋습니다. 능력보다 많은 보수를 받아도 좋습니다. 일만 잘하면 뭐라고 하겠습니까. 그런데 이게 뭡니까. 하기야 이명박 대통령도 ‘버럭 과장’이라는 별명을 얻었으니 더 무슨 말을 하겠습니까만….

<원희복 편집장 wonhb@kyunghyang.com>

2008/07/15 (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