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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장 편지

응어리를 만드는 정권과 푸는 정권

양심수란 폭력을 사용하지 않았음에도 정치·종교·국가·사회적 이유로 투옥된 사람이라고 정의하고 있습니다. 간단히 말해 권력을 비판했다고 고통을 받는 사람입니다. 과거 권위주의 시절에는 양심수를 양산했습니다. 정부를 비판하거나 통일운동을 하는 사람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간첩으로 조작해 사형에 처하고, 노동운동을 하던 사람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업무방해죄로 감옥에 보냈습니다.

얼마 전 미국 AP통신이 한국전쟁 시 10만 명 이상을 집단처형하는 것을 묵인했다는 보도가 나왔습니다. 이른바 보도연맹사건으로 무려 20만 명의 억울한 양민이 희생됐습니다. 우리와 동시대에 살고 있는 세대에 일어난 참담한 비극입니다. 전쟁이 아니라도 5·16 군사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군사정부가 살해·투옥한 인사도 수백 명이 넘습니다.

2000년 민주화운동보상심의위원회가 만들어졌습니다. 이 기관은 1964년 이후 권위주의 정권에서 민주화를 위해 노력한 사람의 명예를 회복하고 보상하는 정부기관입니다. 이 위원회는 최근까지 1만3348명의 명예를 회복시키고 3784명의 전과기록을 삭제했습니다. 최소한 이들은 과거 권위주의적 정부가 만들어놓은 양심수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요즘에는 간혹 노동운동을 하다 업무방해죄로 구속되는 사람이 있긴 하지만 언론에서 양심수는 생경한 단어가 된 지 오래입니다. 물론 양심수 가족의 모임인 민가협에서는 지금도 900명에 가까운 양심수가 있다고 하고 요즘에는 종교 혹은 신념에 따라 입대를 거부하는 사람도 양심수에 포함시키기도 합니다.

쇠고기 수입 협상 문제로 촛불집회를 주도한 사람에게 집시법 위반으로 사법처리하겠다고 난리입니다. 이들은 경찰에 쫓겨 서울 조계사에서 천막을 치고 108배를 하고 있습니다. 촛불집회를 이어갔던 성직자도 사법처리 운운합니다. 언론소비자 주권운동을 하던 네티즌도 대단한 범죄인인 양 출국금지시키고 사법처리를 벼르고 있습니다. 촛불시위를 불법·폭력시위라고 믿는 국민이 얼마나 될까요. 촛불시위가 그토록 무서웠습니까. 대한민국이 국제사면위원회(엠네스티)로부터 조사받는 신세가 됐습니다. 도대체 대한민국 시계는 어디로 가고 있는 것일까요.

이들은 이 시대, 아니 이명박 정권이 낳은 양심수입니다. 이들은 지금은 쫓기는 범죄자 신세지만, 바로 얼마 전 우리 역사가 웅변했듯이 그들은 이 시대의 자랑스러운 양심수로 기록될 것입니다. 이번 호 뉴스메이커에서 바로 그 양심수의 면면을 확인하십시오.

안타까운 것은 많은 노력으로 양심수에 대한 과거의 상처를 거의 치유해가고 있는 이즈음 또다시 아픈 상처를 만들어 어찌하려는 것이냐는 겁니다. 어느 정권은 한맺힌 역사의 응어리를 만들고 어느 정권은 이를 풀어야 합니까. 대통령이라면 최소한의 시대의식 내지 역사의식은 가져야 하지 않을까요.

<원희복 편집장 wonhb@kyunghyang.com>

2008/07/22 (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