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난관리 체계를 일원화하기 위한 소방방재청이 우여곡절 끝에 만들어진다. 지난 2월 대구지하철 화재 참사 이후 대통령은 재난관리 시스템 정비를 국정운영의 최우선으로 삼겠다고 약속했다. 국회도 재난대책을 마련하라고 대정부 결의안까지 냈으며, 언론도 재난관리 시스템의 후진성을 지적하며 부산을 떨었다.그러나 정작 만들어 놓은 재난관리 시스템에는 아무도 관심이 없는 듯하다. 언론이야 원래 냄비기질이 있다지만 정부가 만든 소방방재청 진행 과정을 지켜보면 실망스럽다 못해 안타깝다는 생각이 든다. 솔직히 이 정도 역량을 가진 행정자치부가 앞으로 이어질 정부조직 개편을 주도할 수 있을 것인지에 회의까지 든다.

그 이유는 소방방재청을 만들면서 왜 재난관리 시스템을 일원화해야 하는가 하는 본질적 문제는 사라지고 조직 이기주의와 행정편의주의만 난무했기 때문이다.

문제의 시작은 왜 우리나라는 지하철 화재로 200여명이 숨지고 태풍이 한 번 지나가면 100여명이 물에 휩쓸려가는 재해 후진국인가에서 찾아야 한다. 얼마전 태풍 매미가 지나가면서 경남 마산의 한 노래방에 해일이 덮쳐 8명이 숨졌다. 그런데 지하 3층까지 찬 물을 소방차가 빼내는 데 무려 23시간이나 걸렸다. 침수된 건물주변에서 가족들이 "우리나라는 고성능 양수기 한 대 없는 후진국이냐"고 절규하는 데도 말이다. 바로 이것이 우리의 재난대응 수준이고 현실이다. 왜 고성능 양수기는 도청 창고에 놔두고, 원래 기능과 무관한 소방차가 물을 빼야 했는가. 이런 문제점을 해소해 인명피해를 최소화하자는 것이 재난관리 시스템을 개혁하려는 진정한 취지였다.

자연재해를 다루는 자연재해대책법과 인위적 재난을 규정한 재난관리법을 통합해 재난 및 안전관리기본법을 만든 이유도 그 때문이다. 모든 재난이나 재해는 예방-대비-대응-복구 단계를 거친다. 그중 사람의 생명과 직결된 대응단계는 자연재해나 인위적 재난이 같기 때문에 이를 통합하려 한 것이다.

그래서 전문가들은 24시간 대응체계를 갖춘 조직을 중심으로 재난관리를 일원화하도록 요구했다. 한마디로 위기시 즉각 가동해 국민의 재산과 생명을 구할 날쌘 표범을 만들라는 것이다.

하지만 행정관료들은 재난관리 체계를 날쌘 표범은커녕, 코끼리도 아니고 하마도 아닌 이상한 조직으로 만들어놨다. 자연재해와 인위적 재난의 예방과 복구 시스템은 전혀 다른 차원인 데도 이를 모두 맡겠다며 업무만 불려놨다. 게다가 신설청은 원자력은 물론 금융대란 같은 새로운 위기까지 망라하고 있다. 지금 행자부에, 신설청에 이런 위기를 다룰 능력이 있느냐 하면 전혀 그렇지 않다. 결국 재난관리 체계는 현장이 아닌 책상에서 서류만 양산하는 모양을 만들어놨다. 나중에는 장관까지 가세해 신설청의 명칭을 놓고 논란을 벌이기도 했다. 날쌘 표범이 아닌 코끼리 비슷한 하마를 만들어놓고 이것이 코끼리냐, 하마냐 하는 본질과 전혀 상관없는 논란을 벌인 것이다.

지금 소방방재청은 첫 단추부터 잘못 끼운 것이다. 첫 단추를 잘못 끼우다보니 본질적인 문제는 뒷전으로 밀려 일원화하라는 현장 지휘체계는 장관-청장으로 오히려 이원화되게 개악했다. 담당자들도 지금의 재난관리 체계는 문제가 있는 것을 인정하면서 시간이 없으니 그대로 가자고 하고 있다. 이 기획단에 참여했다가 공무원에게 휘둘리던 한 민간 전문가는 "대구 지하철 화재로 숨진 수백명의 영혼에 더이상 죄를 지을 수 없다"며 중도에 사퇴했다.

허성관 행자부장관은 재임중 재난관리 체계를 확실히 한 장관으로 남고 싶다고 했다. 매우 바람직한 이야기다. 표시도 나지 않으면서 골치만 아픈 일을 챙기겠다는 사람은 많지 않았기 때문이다. 허장관이 진정으로 그러고 싶다면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한다. 그것이 사고로 죽은 사람의 영혼을 달래고 산 사람은 계속 살리는 길이다.

원희복 지방자치부 차장 wonhb@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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