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 '마키아벨리' 혹은 '마키아벨리즘' 하면 목적을 위하여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권모술수정치를 일컫는 말로 통용된다. 마키아벨리처럼 철저하게 '악의 화신'으로 전락한 정치인도 드물 것이다. 그는 수백년간 모든 악의 근원이며 음흉한 정치의 상징으로 인식됐다. 로마교황청은 마키아벨리의 모든 저서를 금서로 지정했을 정도다.요즘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일부계층의 행태도 이와 유사한 느낌이다. 야당과 일부 언론, 극우단체는 노대통령을 모든 국가위기의 원인 제공자이며 혼란의 화신으로 규정하고 있는 듯하다.

사실 노정권이 보여주는 국정운영 행태는 과거 사고에 익숙한 사람들에겐 이해하기 어렵다. 청와대라는 권력의 핵을 중심으로 일사불란한 통제력에 익숙한 사람에게 지금은 국정난맥으로 보일 수 있다. 그동안 학맥과 인맥으로 엮어 알짜 보직을 나눠 챙기던 관료에게 지금의 파격 인사는 졸속 인사로 보일 뿐이다. 뒤로 정치자금을 제공하고 특혜를 얻는 데 익숙한 기업은 현 정부가 '미숙아' 정도로 보일지도 모른다.

심지어 충격에 위기감까지 느낄 것이다. 검찰이 여당 대표를 잡아 넣겠다고 공언하는 것을 보는 정치인에게는 심각한 충격일 것이다. 부정확한 사실로 시대적 공론을 모으기보다 특정 이익을 추구하던 일부 언론의 입장에선 도전이다. 한반도에 전쟁이 재발하건 말건 남북긴장으로 이득을 보던 사람들에게 주변은 모두 국가보안법 위반자로 보일 뿐이다.

이런 사람의 눈에 노대통령은 대통령이 아닌 모든 국가위기의 원인 제공자이며 혼란의 화신이 될 수밖에 없다. 마치 중세교회가 마키아벨리를 모든 악의 화신으로 규정한 것과 일면 비슷하다.

중세교회가 마키아벨리를 그토록 철저하게 짓밟은 이유는 간단했다. 마키아벨리는 중세 암흑기에서 고대 로마의 찬란한 영광을 르네상스라는 시대조류를 통해 이탈리아에 재건하려는 원대한 이상을 가졌다. 그 방법으로 권력은 곧 교회라는 당시의 '진리 아닌 진리'에 도전한 것이다.

지금 노정권은 수십년간 우리사회를 지배하던 '진리 아닌 진리'에 도전하고 있다. 그 진리 아닌 진리는 무소불위의 청와대, 살인자를 영웅으로 둔갑시킨 국가정보기관, 정치권력의 시녀 소리를 들었던 검찰, 남북 대결국면으로 이득을 보는 특정세력, 기업의 경쟁력 확대보다 정치자금을 통한 특혜에 관심이 많은 기업, 실력보다 학벌이면 출세가 보장되는 사회 등등이다.

그동안 많은 사람은 우리사회를 지배했던 이런 고질적인 구질서를 혁파해야 한다고 얘기했다. 하지만 막상 이런 구질서를 혁파하겠다고 달려든 정치인은 많지 않았다. 중세 교회에 도전했다가 수백년간 악인으로 낙인찍힌 마키아벨리처럼 구질서의 집요한 저항과 역공이 두려웠기 때문이다.

마키아벨리도 "아직까지 누구도 지나가지 않았던 길을 택하는 것이 두렵다"고 고백하기도 했다. 마키아벨리의 이 고백은 불행히 적중했지만 그의 시대정신은 궁극적으로 옳았다. 그래서 마키아벨리는 지금 '현대 정치학의 아버지'라는 평가를 받는다.

다행스러운 일은 노정권은 마키아벨리보다 쉬운 싸움을 한다는 사실이다. 마키아벨리가 군주의 힘을 키우는 방법으로 구질서와 싸웠다면 노대통령은 자신이 가진 권력을 스스로 포기하는 방법으로 구질서와 맞서기 때문이다. 내것을 버리겠다는 데에는 누구도 당해낼 재간이 없다. 노대통령은 이미 '버리는 승부'에 달관한 경지에 이른 사람이다.

그래서 노대통령을 가리켜 '바보 노무현'이라고 하는지 모르겠다. 하지만 그는 이 시대를 건 대결에서 바보가 아닌 철저히 마키아벨리적이어야 한다. 상대는 여전히 강하고 또 집요하다. 게다가 권력을 스스로 포기하는 권력자를 앞으로 다시 만들기란 쉽지 않기 때문이다.

원희복 지방자치부 차장 wonhb@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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