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희복 기자의 타임캡슐(64)

영남 3총사-사육신 후손? 


우리나라는 유교적 전통과 혈연문화로 조상 숭배와 가문에 대한 집착이 유달리 강하다. 살아서 가문의 수치란 말이나 죽어서도 조상 뵐 낮이 없다는 말은 모두 그런 맥락이다. 이는 낡았지만 조상을 욕보이지 않게 처신을 잘하라는 측면에서 좋은 교훈이다.

 





사진은 1960년 7.29총선이 끝난 후 원내에 진입한 세 의원이 지금은 철거된 중앙청(광화문앞뜰에서 찍은 사진이다오른쪽 김영삼 의원박해충 의원그리고 앉아 있는 이가 박준규 의원이다부산(거재출신 김영삼경북 안동 출신 박해충그리고 대구(달성군출신 박준규 세 의원은 사진속 포즈처럼 매우 친해 영남 3총사라는 별명을 들었다특히 김영삼 의원과 박준규 의원은 청조회를 만들어 정풍운동을 하다가 여당 민주당을 탈당야당인 신민당을 창당해 나가는 등 정치적 행보도 같이했다.



사진 속 박준규 의원은 사육신의 한 사람인 박팽년의 후손이고, 김영삼 의원 역시 사육신인 김문기와 같은 금녕 김씨 집안이다. 익히 알려진 것처럼 사육신이란 조선시대 수양대군이 어린 조카 단종으로부터 왕위를 빼앗은 것에 항의하다 죽은 네 신하를 말한다.


김영삼 의원은 이후 야당으로 일관, 초산테러를 당하고 목숨을 건 단식투쟁을 했다. 그러나 김 의원은 막판 자신이 싸웠던 유신의 공화당 세력(김종필)과 민정당 세력(노태우)과 합당을 통해 대망의 대통령이 됐다. 하지만 3당 합당은 사육신 집안에 오점으로 기록된다.


사육신중 단연 으뜸이 박팽년이다. 박팽년은 왕위 찬탈에 항의해 경회루 연못에 뛰어드는 자살을 감행했다. 그리고 세조가 박팽년의 능력이 아깝게 여겨 자신을 주군으로 인정하면 살려주겠다고 했으나 박팽년은 나는 단종의 신하이지 나으리(세조)의 신하가 아니라라고 거절했다. 결국 박팽년은 옥중에서 고문으로 죽고, 다시 능지처참되는 극형에 처해진다. 3족이 멸족되는 멸문지화까지 당했다.


그 박팽년의 후손인 박준규 의원은 조상과 180도 다른 삶을 살았다. 박 의원은 민주당- 신민당을 거쳐, 5.16 쿠데타가 나자 공화당으로 박정희 정권에서 6선을 연임했다. 198012.12의 신군부에 협력해 노태우 정권에서 국회의장이 되더니, 다시 옛 친구인 김영삼 정권에서 국회의장에 연임됐다.


그러나 박 의원은 70채의 서민주택을 보유했다가 재산공개 파문으로 ’() 당하자, 김종필에게 달려갔다. 박 의원은 운 좋게 DJP연대로 김종필이 실세가 되자, 다시 김대중 정권에서 국회의장이 돼 국회의장 3선이라는 전무후무한 기록을 세웠다. 물론 국회의원 선수도 최다선 9선이다.


아마 정치권에서 박준규 의원만큼 양지에서 양지로 옮겨 다니며 화려한 영달을 누린 정치인은 없을 것이다. 헌정이 단절되고 정치보복이 다반사였던 난세의 현대사에서 이런 정치적 행보를 걸었다는 것은 정말 기록적이다.


그 박준규 의원이 53일 세상을 떠났다. 89세까지 살았으니 부귀와 장수를 동시에 누린 것이다. 하지만 세상은 그의 사망소식에 별로 슬퍼하지 않는 분위기다. 蓋棺事定(개관사정, 사람은 죽은 뒤에야 정당한 평가를 받는다)이라 했던가. 무엇보다 그는 조상 박팽년을 무슨 낮으로 뵐까 궁금하다. 그나마 국회장 마다하고, 가족장 유언한 것은 그 때문이었을까?

 

*사진 속 팔팔하던 박해충 의원은 야당으로 일관하다 2005년 세상을 떠났고, 김영삼 의원도 현재 노환으로 힘겨운 병원생활을 하고 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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