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3월 4일 박근혜 대통령은 결연한 표정으로 대국민담화문을 발표했다. 야당의 정부조직법 개정에 대한 비협조를 성토하는 자리였다. 몸짓 하나하나, 억양 하나하나가 단호하고 일면 비감하기까지 했다. 대통령의 대국민담화는 국민을 상대로 정치를 하겠다는 것이다. 야당과 국회는 없어졌다. 


박 대통령의 결연한 대국민 담화가 끝나자 마자 야당은 즉각 ‘제2의 유신정치’ ‘야당을 유정회로 아느냐’는 반발이 나왔다. 이날 민주당 문희상 비대위원장은 “여야가 장기를 두고 있는데 훈수를 두던 대통령이 판을 엎어버렸다”고 말했다. 여의도에는 ‘정치는 사라지고 통치만 남았다’는 자조적인 말이 나오고 있다. 




사진은 1967년 12월 국회모습이다. 당시 박정희 대통령은 7대 국회의원 선거(6·8)에서 3선 개헌을 생각했고, 원내 개헌선 확보를 위해 대대적인 부정선거를 자행했다. 이에 야당인 신민당은 선거무효 투쟁에 돌입했고, 전국적인 학생시위로 전국 주요 대학과 고등학교까지 휴교령이 내려졌다. 당시 신민당은 국회에서 아예 이부자리를 깔고 숙식 농성을 벌였다. 사진은 농성의 막바지, 그러니까 12월 예산을 담보로 국회에서 농성을 벌일 때 상황이다.


왼쪽의 공화당 예춘호 의원과 오른쪽 신민당 김상현 의원, 그리고 가운데 훈수를 두는 사람이 김종필 당시 공화당 당의장이다. 김 의장 뒤에 당시 공화당의 ‘젊은피’ 김재순 의원(노태우 정부시절인 13대 국회에서 국회의장을 지냄)과 그 옆에는 최병렬 기자(5공시절 정치에 입문해 신한국당 대표를 지냄)도 보인다.


정국이 극도로 파행을 치달았지만 여야 의원이 국회에서 바둑을 두고 있는 것을 보니, 당시에는 정치에도 낭만이 있었던 것 같다. 특히 당시 정치적 2인자인 JP가 옆에서 훈수까지 두고 있는 모습이 이채롭다.


사실 이런 배경에는 이유가 있다. ‘노회한’ JP는 박정희 대통령이 장기집권을 위한 3선 개헌이라는 ‘무리수’를 두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차기를 노리는 JP는 당연히 반대했다. 심경적으로 JP는 야당편이었다. 그래서 국회에 ‘6·8 부정선거조사 특위’ 구성을 약속하는 등 정국타개 돌파구를 마련했다. 부정선거조사 특위를 구성하더라도 자신은 책임이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것을 모를 박 대통령이 아니었다. 여야의 합의에 박 대통령은 진노했고, 당연히 여야 합의는 파기됐다.국회는 파행으로 일관하면서 1967년 예산안은 여당만의 날치기로 처리됐다. 물론 정치는 사라졌다. 나름 ‘복잡한 정치력’을 보인 JP도 이 사건이후 박정희 대통령 눈밖에 났다.


2013년 3월 여의도 모습은 47년전 사진속 정국과 정확히 판박이다. 여야가 정부조직법 협상을 이어가는데, 마지막 청와대가 이를 틀어버린 것이다. 야당 대표는 “여야가 장기를 두고 있는데 훈수를 두던 대통령이 장기판을 엎어버렸다”고 말했다. 또 ‘정치는 없고, 통치만 남았다’는 말이 나오는 것은 47년전과 똑같다. 


박근혜 대통령 시대가 출범하자 마자, 아니 정식 출범하기도 전에 47년전 부친이 만든 정국이 재연되는 것 같아 안타깝다. 이후 박정희 정권은 영구집권의 유신시대를 거치다 비극적 종말을 고했다. 역사에는 공과가 있다. 부친에게서 배워야 할 것과 배우지 말아야 할 것이 있다는 것이다. 박근혜 대통령도 후보시절, 그 점을 인정하고 사과하지 않았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