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 군인이 득세하던 전두환 정권 시절 ‘국방위 회식사건’이라는 것이 있었다. 1986년 3월 21일 저녁 서울의 한 요정에서 국회 국방위원과 고위장성이 함께 술을 마시다 난투극을 벌인 사건이다. 당시 실세 군인들이 여당 원내총무에게 “이새끼… 총무가 뭐 이렇게 늦게 오고 그래?”라며 힐난했다. 이를 지켜보던 기자 출신 남재희 의원이 맥주잔을 맞은편 벽에 던졌다. 맥주잔이 깨지면서 유리파편이 한 장성의 얼굴에 튀어 피가 흘렀다. 이에 군인들이 국회의원에게 발길질을 하며 두들겨 팼다. 이는 권력의 실세(군인)가 국회(의원)를 무시한 대표적 사례라고 할 수 있다.

지난 2014년 11월 13일. 육군 중장 출신의 박승춘 국가보훈처장이 국회 정무위원장실을 찾았다. 박 처장은 정우택 위원장에게 예산심사소위에서 보훈처 예산이 삭감된 것을 따지며 거세게 항의했다. 흥분한 박 처장은 정 위원장의 탁자를 손으로 내리치며 서류를 던지기까지 했다고 한다. 중앙부처 차관을 지낸 한 인사는 “차관급 부서장이 국회의원, 그것도 여당 상임위원장실에서 책상을 치고 서류를 내던지며 따지는 행위는 상상할 수 없는 일”이라고 말했다.

박승춘 국가보훈처장이 지난 4월 15일 국회 정무위에서 ‘임을 위한 행진곡’을 5·18 기념노래로 지정하는 것이 부적절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 정지윤기자


부서장이 국회의원에게 굽신거릴 수밖에 없는 이유는 부서 운영에서 알파와 오메가인 법령과 예산을 쥐고 있기 때문이다. 간혹 국정감사에서 ‘혈기 넘치는’ 국장급이 말도 안 되는 질의를 하는 국회의원에게 ‘입바른 소리’를 하는 경우는 있다. 하지만 부서장이 그런 경우는 거의 없다. 과거 행정자치부 국감장에서 국회의원에게 입바른 소리를 했던 모 국장은 인사조치됐고, 과장까지 극심한 피해를 받았다.(당시 곤욕을 치른 그 과장은 지금 국회의원이 되어 당시 자신을 괴롭혔던 국회의원과 같은 당에 있다)

4번 국감 받으며 ‘국회파행 제조기’
박 처장의 이런 행동에 대해 김기준 의원(새정치민주연합)은 “분노조절장애 환자도 아니고 코미디 같은 행태를 만천하에 드러냈다”면서 “이쯤 되면 본인이 알아서 그만두는 게 도리”라고 비난했다. 하지만 박 처장은 “공직은 국가가 부여한 것”이라며 “개인적으로 제 거취에 대해 말하는 건 적절치 않다”고 당당하게 맞받아쳤다.

박 처장은 ‘국회 파행 제조기’라는 달갑지 않은 별명을 달고 있다. 박 처장은 국감을 네 번 받았는데 매번 돌출행동으로 주목을 받았다. 지난 10월 10일 국회 국정감사장에서도 예외가 아니었다.(상자기사 참조) 박근혜 정부에서 행정기관 수장이 문제가 된 경우는 여러 번이다. ‘상식적’으로 이해하기 힘든 행동을 했던 윤진숙 해양수산부 장관의 경우 직권면직되기도 했다.

하지만 박 처장의 돌출행동은 과거 윤 해양수산부 장관의 경우와 다르다. 윤 전 장관의 경우 ‘정말 몰라서’ 혹은 ‘천성적 성격’ 때문으로 이해되지만 박 처장의 행동은 그 속내를 알기 어렵다. 물론 박 처장의 이런 행동은 그가 권력의 ‘실세’라는 자신감에서 나왔을 것이다. 그런 면에서 박 처장의 행동은 앞서 예를 든 전두환 정권 시절 국방위 회식사건과 유사하다.

업무성적 꼴찌 불구 정부 바뀌어도 연임
박 처장은 2011년 2월 이명박 정부에서 국가보훈처장에 임명된 후 2013년 3월 박근혜 정부에서도 연임, 2개 정부에서 신임을 받고 있는 최초의 유일한 장·차관급 기관장이다. 김관진 국방부 장관은 박근혜 정부에서 임명한 김병관 국방부 장관 내정자가 38일 만에 자진사퇴함에 따라 ‘어부지리’로 유임된 경우다. 감사원장이나 국민권익위원장, 국가인권위원장은 모두 임기가 있다. 따라서 명실상부 2개 정권에서 유임된 정무직 기관장은 그가 최초이자 유일하다. 업무능력이 워낙 뛰어나서일까.

그런 것 같지도 않다. 그가 재임하는 보훈처는 정부업무평가에서 거의 꼴찌를 맴돌았다. 국무총리실에서는 정부업무평가위원회를 두고 매년 장·차관급 부처의 주요 역점 시책을 평가한다. 전문가를 동원해 최우수-우수-보통-미흡 4단계로 이뤄지는 이 평가는 공식적인 부처 평가로 사실상 부서장의 업무성적표이다. 상금도 푸짐하다.

지난 10월 10일 국가보훈처 국정감사에서 박승춘 국가보훈처장이 논란 끝에 겨우 인사말을 하고 있다. | 권호욱 선임기자


박 처장이 부임한 2011년 정부업무평가를 보면 보훈처는 전체 기준 ‘보통’의 평가를 받았고, 특히 정책관리역량 부분에선 방위사업청과 함께 꼴찌인 ‘미흡’ 판정을 받았다. 2012년도 마찬가지다. 보훈처는 전체적으로 국세청 등과 함께 ‘보통’ 평가를 받았지만, 정책관리역량 부분에서 문화재청, 법제처와 함께 ‘미흡’ 판정을 받았다. 차관급 기관으로 연속 꼴찌인 ‘미흡’ 판정을 받은 기관은 오직 보훈처뿐이다. 그의 재임 기간 보훈처 업무성적표는 전체 장·차관급 정부기관 중 사실상 꼴찌였던 것이다.

대외적으로도 박 처장의 보훈처는 많은 논란의 중심에 있었다. 박 처장은 부임하자마자 국가유공자 서훈을 결정하는 공적심사위원회에서 진보적 성향의 역사학자를 대거 교체해 학계의 반발을 샀다. 결국 장대섭 보훈심사위원장이 그의 독단적인 조직 운영에 반발하며 “(박 처장은) 독립유공자들의 독립정신과 민주정신은 배제하고 안보교육에만 치중하고 있다”면서 “어떻게 반공과 대결만 강조하는 냉전적인 역사인식으로 평화와 통일이 화두인 21세기의 보훈처를 감당해낼 수 있겠는가”라고 공개적으로 비판했다.

2011년 8월 전두환 전 대통령의 경호실장을 지낸 안현태씨를 국립대전현충원에 안장하는 과정에서 부당한 영향력을 행사한 사실을 국회에서 부인하다가 나중에 감사원 감사에서 적발됐다. 국회는 그를 위증혐의로 고발하려 했지만, 임기가 끝나면서 유야무야됐다. 또 자신이 설립한 ‘국가발전미래교육협의회’에 보훈처 안보 강의를 몰아줬다는 의혹도 받았다. 이 단체의 안보 강연에는 “촛불시위대는 종북세력이며, 전 민주당 대표의 ‘국민의 명령 백만 민란운동’은 간첩세력”이라는 내용이 있다.

전역 직후 한나라당에 입당 정치권으로

전문가에 의한 객관적인 정부업무평가에서 거의 꼴찌 판정을 받고, 이렇게 사회적인 문제를 계속 야기한 기관장이 연임됐다면 그것은 특별한 업무외 능력 때문일 것이다. 시사평론가 박상병씨는 박 처장에 대해 “믿는 구석이 있으면 겁나는 것이 없는 것”이라며 “대통령의 측근인사로 분류가 되다 보니까 장관이든, 국민이든, 국회든 겁나는 게 없는 것”이라고 평가했다.

그가 믿는 그것은 뭘까. 그는 스스로 “강릉상고를 나와 학연도 지연도 없이 육군 중장까지 승진하는 동안 누구에게 부탁도, 로비도 해본 적이 없다”고 자주 말했다. 누구를 의식하지 않고 소신껏 행동한다는 말이다.

과연 그럴까. 박 처장은 차관급 기관장에 어울리지 않게 정치적 행보를 많이 걸었다. 박 처장은 전역 직후인 2005년 한나라당에 입당했고, 2007년 대선 때 박근혜 캠프에서 활동하는 등 일찌감치 정치판에 몸을 담았다. 비례대표 공천을 신청했지만 탈락하는 등 정치판의 쓴맛도 봤다. 무엇보다 박 처장은 체험적으로 ‘상대’(임명권자)를 아는 사람이다. 그는 전투정보과장, 군사정보부장, 합참 정보본부장 등 군생활 대부분을 정보분야에서 일했다. 군대에서 정보란 적(상대)의 의도를 알아내는 업무다. 철저히 상대 입장에서 객관화하고, 치밀하지 않으면 안 되는 일이다. 고위공무원에게 매우 중요한 임명권자의 의지를 알아내는 능력은 정보업무와 상통한다. 박 처장이 최하위권 업무평가와 사회적 논란에도 불구하고 연임할 수 있었던 노하우는 이것 덕분일 것이다.

2013년 9월 야당 국회의원들이 박승춘 국가보훈처장의 대선개입 의혹 발언이 담긴 동영상을 보고 있다. | 박민규기자


노골적인 안보교육으로 사실상 대선개입이라는 비난을 받으면서도 계속하는 나라사랑 교육이나, 박정희 전 대통령을 찬양하고 반유신 세력을 종북좌파로 폄하한 동영상을 배포한 일, 여야 의원 158명이 ‘임을 위한 행진곡’을 5·18 기념곡으로 지정하라는 결의를 무시하는 돌출행위가 역설적으로 자신의 연임 근거인 것이다.

박 처장은 유임 발표 당시 한 언론과 인터뷰에서 “2년 동안 젊은이들이 균형 있는 역사의식을 갖도록 하는 나라사랑 교육에 역점을 뒀는데 그 일을 더 열심히 하라는 취지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본인 스스로 이런 정치적 행보가 자신의 유임 근거임을 고백한 대목이다. 그가 이번 국정감사장에서 TV로 중계되는 나라사랑 교육 업무보고를 해야 한다고 주장한 것도 이런 맥락에서 보면 이해가 된다. 따라서 지금 박 처장의 좌충우돌적으로 보이는 행보는 고도의 계산된 행동이라고 보는 것이 옳다. 김기식 의원(새정치연합)도 “국감장을 개인적인 정치적 선전의 장으로 삼겠다는 매우 의도된 행동”이라고 평가했다.



국정감사장 돌출행동, 국회의원들과 ‘설전’

10월 10일 오전 국회 정무위원회 국정감사장. 국가보훈처 국정감사가 시작됐다. 부처 업무보고는 유인물로 대체하고 인사말과 간부 소개가 끝나면 곧장 질의에 들어가기로 여야가 합의한 상태였다. 이에 박승춘 보훈처장이 이의를 제기했다.

박승춘 처장 다른 부서는 모르겠지만, 보훈처 업무는 첨예하고 논란이 됐기 때문에 충분히 설명해 드릴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따라서 보훈처 업무는 보고해 드릴 수 있게 해주시기 바랍니다.

정우택 위원장 보훈처장께서 강한 애국심을 갖고 하는 것은 좋습니다만, 여야에서 합의했기 때문에 원만한 운영을 위해 받아들이기 바랍니다. 인사말씀과 간부 소개를 해주시기 바랍니다.

박 처장 위원장님 말씀, 인식합니다. 그러나 국가보훈처 업무, 나라사랑 업무는 국가안위와 관련된 문제고, 특히 국민의 관심사이기 때문에… 이 국정감사를 TV를 통해 보고 있기 때문에….(소리 지르는 의원 있음)

정 위원장 아니, 증인! 위원회 운영은 여야가 합의한 것인데… 위원장으로서 좋은 말씀으로 권고하니 수용해주시기 바랍니다.

박 처장 (한참을 서서 생각하더니) 위원장님, 저는 업무보고를 드리는 것이 좋다고 생각합니다.(이때 국회사무처 직원이 정우택 위원장에게 규정집을 가져다 준다)

정 위원장 이거 국회법 120조를 보면 증인 발언은 위원장 허가를 얻도록 돼 있습니다. 더 하면 위원들로부터 좋지 않아요. 오케이?

박 처장 제 말씀 좀 들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제가 정부기관의 장으로서 말씀드리는 겁니다. 제가 국정감사 4회째 받고 있습니다. 질의응답만 하면 정부 입장을 충분히 개진할 수 없어, 세금 내는 국민의 입장에서….

정 위원장 (큰 목소리로) 저- 처장! 처장! 여기 지금 국회 설득하러 왔어요, 지금? 여기 국회의원에게 설득하러 왔어요?

박 처장 설득하러 온 것이 아니라….

정 위원장 위원장이 발언 안 준다는데 왜 자꾸 그래요?

박 처장 저는 당위성을 말하는 겁니다.

정 위원장 참나 …(한숨을 쉬며) 인사말씀과 간부 소개 생략하겠습니다. 자리에 가서 앉으시기 바랍니다. 자리 가서 앉으세요. 국정감사하면서 피감기관에서 저렇게 얘기하는 분 첨봤다. 처장, 처음부터 이러면 회의가 진행되겠습니까.

박 처장 저는 다른 상임위도 마찬가지로….

정 위원장 (서류를 집어 던지려다 말고) 위원들이 업무보고 안 받겠다는데 왜 그래요? 하휴 참.

김용태 의원(새누리당) 저도 황당한 상황인데, 정부 입장표명엔 방식이 여러 개 있습니다. 정부 입장을 피력하시려면 국정감사 자리 아닌 공식적인 기자회견 자리에서 하시기 바랍니다.

박병석 의원(새정치민주연합) 국정감사의 본래 목적은 행정부가 1년 동안 해온 것에 대해 국회가 평가하고 시정을 요구하는 자리입니다. 국회 네 번 들어와 이런 경우 처음 겪는 일입니다. 보훈처장께서는 국민의 세금을 쓰는 수장으로서 최소한의 도리와 예의를 지켜야 합니다.

김기식 의원(새정치민주연합) 보훈처장이 보여주는 태도는 피감기관으로서의 태도가 아니라 이 국정감사장을 개인적인 정치적 선전의 장으로 삼겠다는 겁니다. 자신의 정치적 지지세력에게 보여주는 국감을 하겠다는 매우 의도된, 국회에 대한 도발이라고 생각합니다. 오늘 국감장을 정치적 장으로 본인이 만들어 가려는 의도이고, 국회에 대한 능멸이고 도전입니다. 이건 여야의 문제가 아닙니다.

김태환(새누리당) 보훈처장, 이렇게 하시죠. 일단 간부 소개하시고 질의 순서에 들어가 의견이 있으면 하면 되지 이렇게 시작도 못하게 하면 얘기가 안 되는 겁니다. 사과하시고 빨리 하세요.

정 위원장 이 자리는 국정감사 자리입니다. 국가보훈처는 피감기관입니다. 인사말씀과 함께 간부 소개해주시기 바랍니다.

박 처장 국가보훈처장입니다….(인사말을 형식적으로 빠르게 줄줄 읽고 간부 소개를 마침)


<원희복 선임기자 wonhb@kyunghyang.com>